6월25~30일

6월25~30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6월 22일(금) 11:15

월-온유한 마음의 소유자
본문 : 마태복음 5:5
찬송가 : 427장
 
교육전도사 시절 연로하신 담임목사님께서 필자를 불러 볼펜을 손에 들고서 "딱딱한 것은 조금만 구부려도 부러지기 쉬우나 부드러운 것은 모든 것에 적용되고 적응하게 됩니다. 부디 온유한 목회자요, 외유내강(外柔內剛)형 목회자가 되시오"라고 커다란 가르침을 주셨다. 그리고 왜 성령의 열매 중에 '온유'가 열매 맺어있는지를 목회의 연륜이 쌓일수록 절절이 느끼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성품 중에 하나는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이 .구스 여자를 취한 일로 모세를 비방할 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두둔하시며 권위를 지켜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마실 물이 없어 지도자를 원망할 때 모세와 아론은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며 두 번이나 지팡이로 반석을 치는 온유가 상실된 모습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상심시켰고 그것은 두 사람의 가나안 땅의 통로가 막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온유한 성품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셨던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가르쳐 주셨다. 이 말씀은 야베스의 복처럼 '복에 복을 더하사 그 지경을 넓혀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복음의 지경, 사업의 지경, 인격의 지경, 지성의 지경 등 모든 지경을 넓혀 준다는 것이다. 온유하게 사는 것은 하늘의 영광스런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분리되어지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권고하심 속에 잇대어 지고 머물게 되는 최선의 길이다.
 
온유는 나약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복종시키는 강한 인격의 성품이며 성령의 손길이 깃든 인생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화평을 이루기를 힘쓴다.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고 인간관계를 바르게 맺으며 살아간다. 온유한 사람은 칭찬을 받아도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시와 멸시를 당하여도 화를 내지 아니하며, 모든 일에 겸손함으로 오래 참는다.
 
임종을 앞둔 스승이 노자를 불렀다. "내 입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혀가 보입니다" "이는 몇 개나 보이느냐?" "스승님의 치아는 다 빠지고 한 개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는 다 빠지고 없는데 혀는 남아 있는 이유를 아느냐?"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 버리고 혀는 부드러움 덕분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 그것이 세상 사는 지혜의 전부이니라. 이제 더 이상 네게 줄 가르침이 없구나."
 
온유한 마음은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온유한 자가 발 딛는 동서남북은 하나님의 빼신바 된 기업이 된다. 많은 이웃들이 그의 마음을 토양삼아 생명의 삶을 경작하게 된다. 온유는 믿음의 여름농사가 잘 되는 최고의 비결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이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승리를 얻기까지 온유함을 드러내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모든 일에 온유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현희목사 / 팔복산교회


화-분별하는 지혜
야고보서 3:13-18
찬송가: 455장
 
낚시꾼이 던진 미끼를 물고기가 무는 이유는 그것이 미끼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미끼에 걸려드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미끼에 걸려들면 안된다.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분별하는 지혜이다.
 
그러면 분별해야 될 지혜는 무엇인가?
 
첫째, 땅 위의 지혜이다. 이것은 시기와 다툼, 거짓말이다. 먼저 시기와 다툼은 마치 부메랑과 같다. 이것의 희생자는 상대방이 아니라 항상 나 자신이다. 이러한 시기와 다툼은 가인으로부터 생긴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을 때 가인의 마음에 시기심이 생겼고 그로인해 동생 아벨을 죽였다. 가인은 이러한 시기심의 결과로 저주를 받아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고 말았다. 다음으로는 거짓말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이 무엇이었는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거짓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기와 다툼을 하지 않고, 거짓말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위로부터 난 지혜이다. 이것은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는 것이다. 성결은 거룩하고 깨끗하다는 말이다. 세상과 구별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거룩하고 깨끗해야 하며,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신앙생활 속에서 화평은 매우 중요하다. 화평은 올바른 관계와 질서를 유지함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해야 하며, 자신과 화평해야 하고, 이웃과 화평해야 한다. 관용이란 너그럽게 용서한다는 말이다. 관용을 베푸는 사람은 거친 말이나 난폭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하고 용서해 준다.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도 들어줄 줄 알고, 자기의 주장도 고집하지 않는다. 양순은 온유하고 유순하다는 말이다. 불의한 것이나 나쁜 것에 대해서는 강하지만 선한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말씀을 들을 때도 아멘으로 받는 것이다. 긍휼은 힘들어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가 긍휼이다. 이러한 긍휼을 베풀다보면 선한 열매가 가득하게 맺혀지게 된다. 편견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나쁘게 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다. 그리고 거짓은 진실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분별해야 하는 지혜는 땅 위에 있는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로 나눌 수 있다. 땅 위의 지혜는 많으나 위로부터 난 지혜는 많지 않다.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어야 참된 성도가 되며, 참된 교회를 세울 수 있다. 이러한 성도가 되시기를 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의 삶을 사는 동안 분별하는 지혜를 갖게 하옵소서. 땅 위의 지혜인 시기와 다툼과 거짓말을 멀리 하게 하시고, 위로부터 난 지혜인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선우목사 / 서현교회


수-믿음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본문 : 벧후 1:1-11
찬송가 : 324장
 
며칠 전 귀향하신 권사님이 텃밭에서 재배한 고추를 한 봉지 들고 오셨다. 농사를 지었는데 첫 열매라 목사님 생각이 나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씨를 심어 열심히 가꾸니 열매가 열린 것이다. 씨 안에는 그 생명체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뿌리는 어떻게 내릴지 싹은 언제 나올 것이며 줄기는 어떻게 자라고 열매는 어떻게 달릴 것인지에 대한 모든 것이 씨 안에 있다. 그런데 그 씨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꾸어져야 한다. 믿음 또한 그렇다. 믿음 안에 하나님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믿음 안에 죄사함도 구원도 병고침도 귀신을 물리치는 것도 축복도 영생복락도 들어 있다. 믿음도 뿌리가 내리고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는 과정을 통해 열매가 맺힌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로 말씀하신다.
 
첫째로 우리가 가진 믿음은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갖게 된 믿음은 사도 베드로가 가졌던 믿음과 동일한 보배로운 믿음이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며 하늘의 기업을 물려받게 한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믿음 안에 인생의 모든 것, 금생 뿐 아니라 내생까지의 모두 들어있다. 그러므로 믿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둘째로 믿음은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얻은 선물이다. 믿음이 자라기 위해 덕이 있어야 한다. 덕은 선한 행실을 가능케하는 도덕적 능력이다.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윤리적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또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감성, 이성, 통찰력에 의해 습득되는 일반적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절제가 있어야 한다. 지식의 사용을 삼가고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절제 없는 지식은 무지보다도 더 위험하다. 인내가 있어야 한다. 시련과 박해가 있어도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바라며 참는 것이다. 경건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 경건이다. 사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형제우애가 있어야 하며,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만든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 한다.  
 
믿음의 성장이 없으면 소경과 같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열매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얻은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바로 알고 경건의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한다.
 
셋째로 믿음의 열매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믿음의 열매는 실족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믿음이 되는 것이다. 또 믿음의 열매는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인 동시에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는 삶을 살도록 저를 다스려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허운목사 / 대산교회


목-얼음냉수 같은 사람
말씀: 잠25:8-15
찬송가: 325장
 
6월이지만 벌써 무덥다. 무더울 때 누구나 갈망하는 것은 시원한 것이다. 무더울 때 시원한 곳을 찾고 시원한 것을 먹게 되면 상쾌해진다. 새 힘을 얻는다.
 
사람도 시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답답한 사람이 있다. 도로에 차가 막힌 것처럼, 컴퓨터 속도가 느린 것처럼, 음식 먹고 체 했을 때처럼 답답하게 하는 사람이 아닌 얼음냉수처럼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25:13)."
 
그러면 어떤 사람이 주님과 사람에게 얼음 냉수같이 시원한 사람일까?
 
첫째, 다투지 않는 사람이다.
 
화목한 사람이 시원한 사람이요, 남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시원한 사람이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자나 남을 화나게 하는 사람이나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자는 답답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다투면 안된다. 또한 이웃과 다투면 안된다.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부부간에 다투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다투면 자식에게 많은 상처를 주게 된다. 또한 주의 종과 다투면 안된다. 이는 여호와께 대항하는 것과 같다(출17:2). 교인끼리도 다투면 안된다. 교회를 무너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4:2)."
 
둘째, 말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고 했다.
 
셋째, 책망을 달게 받는 사람이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1:33)"
 
넷째, 충성된 사람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했다. 맡은 일에 늘 충성해야 한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성도는 이름도, 빛도 없이 충성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잠20:6)." 늘 변함없이 충성. 괴로우나 즐거우나 충성하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다섯째, 말만 앞세우는 자가 아닌 실천하는 사람이다.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25:14)."
 
더운 무더위 속에서도 하나님과 사람을 시원케 하는 사람으로 사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들을 오늘의 말씀으로 주장해 주시사, 다투는 자가 아닌 화목자, 언어가 아름다운 자, 책망도 달게 받는 자, 충성된 자, 말보다 행동하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과 사람에게 얼음냉수 같은 자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태부목사 / 밀양교회


금-사랑의 나눔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10:25-37
찬송가: 430장

언젠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광주 설월여고 2학년 8반 학생들이 결식아동을 돕기 위해 간식비를 아껴 기부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한 여학생과 인터뷰를 했다. 여학생은 점심시간에 친구와 즐겨 먹던 사발면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웠지만 자기 반 아이들이 한푼 두푼 모아 결식아동을 도운 것이 참 기뻤다고 했다. 그리고 액수에 비해 너무 많은 관심을 받고 이렇게 방송출현까지 하게 된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방송을 들으면서 '학생들이 한창 배고플 때인데, 어른보다 더 따뜻한 마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전부였다. 다음날 라디오 진행자가 엔딩 멘트를 하면서 이런 말을 전했다. 라디오를 듣고 감동을 받은 한 청취자가 2학년 8반 학생들에게 피자 등 풍성한 간식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간식을 받은 여학생들의 말을 전했다. "누가 보내 주셨는지 모르지만 완전사랑합니다." 밥 못 먹는 어린이를 위해 간식비를 아껴 기부한 학생들, 그리고 기부한 학생들에게 간식을 제공한 무명의 청취자. 정말 가슴뭉클한 대목이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한 율법교사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율법의 가장 커다란 계명이 무엇이냐고 주님이 물었다. 율법교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고 답했다. 그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옳다. 네 대답이 정답이다. 그대로 행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율법교사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내 이웃이 도대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첫째로 이웃에 대해서 무관심이 아닌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관심이 오늘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나 자신이나 내 교회, 내 가족, 내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둘째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의 필요에 응답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종 우리가 이웃들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내 사랑의 아름다운 동기가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오히려 오해와 상처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내 생각으로, 내 방법으로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본문 34절을 보면 '가까이 가서'라는 말로 시작된다. '도움이 필요하면 나에게로 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다가가서 상처를 싸매어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사랑을 말한 후에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율법사에게 질문하셨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바로 이렇게 너도 그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따뜻한 사랑의 열매를 가득 맺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 이웃 가운데 누가 강도 만난 사람입니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의 필요에 응답해 주면서 사랑을 베푸는 나 자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수색교회 / 민철홍 목사     


토-자연을 통해 훈련 받는 요나
본문: 요나 4:1~17
찬송가: 218장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할 뿐이다. 그러나 요나는 도망을 가다가 다시 니느웨로 보냄을 받아 왔고 짧은 메시지임에도 불구하고 니느웨가 회개를 하자 감사는커녕 니느웨가 멸망하지 않음에 대해 하나님께 항의하며 끝까지 불순종한 태도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하여 요나를 가르치신다.
 
구원을 싫어한 요나
 
요나의 외침 결과 니느웨가 회개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이 일에 대하여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4:1)" 여호와를 향하여 불평을 늘어 놓는다.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여기에서 요나의 불평은 선지자로서의 일반적인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은 만인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신다. 다만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우리는 남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죽는 것이 낫다는 요나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은 이방 백성이 아니라 오히려 선지자 요나였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라며 성을 내지만 하나님의 궁극적인 섭리는 언제나 구원에 있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내 기준으로 평가를 하면 옳지 않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라고 하지만 실제 하나님이 죽이겠다고 하면 받아들이겠는가?
 
예비하시는 하나님
 
요나의 생각은 이방인(니느웨)이 멸망 받아야 하는데,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한다. 하나님은 요나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세 가지를 예비하셨다. 즉  박넝쿨, 벌레, 동풍이다. 이런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질문 형식을 빌려 요나에게 말씀하신다. 어디 이것 뿐인가? 이에 앞서 요나가 배를 탔을 때는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내리셨고, 바다에 던져졌을 때는 큰 물고기를 예비해 주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셨다. 요나에는 '큰'이라는 수식이 많다.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은 요나에게 세 가지의 질문을 한다. "네가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아니하겠느냐." 여기에 대한 대답은 오늘의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해야 한다. 
 
요나서는 만인구원사상
 
요나에게 하는 마지막 질문(4:11)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가 이방까지 포함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요나'의 주제를 혹자들은 '이방 선교'에 두는데 이 보다는 편협된 선민 사상에 젖어 이방 민족을 경멸하는 유대인을 향해 그들의 거만을 사정 없이 내려치는 점으로 보아 '만인구원사상'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Artur Weiser).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자연을 통해서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현주목사 / 남양주영락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