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농인의 아이들

23회. 농인의 아이들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6월 19일(화) 09:42
언어적 소수자인 농인(Deaf person)들의 대부분은 같은 농인들과 결혼을 한다. 이는 같은 민족끼리 결혼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런 결혼이 문화적 공통성 때문에 안정감을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농인부부의 자녀 대부분은 들을 수 있는 청인들이고 부모처럼 농인인 경우는 매우 적다.
 
병리적인 관점에서는 부모와 자녀 모두 농인인 것이 '장애의 대물림'이란 불행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농은 문화다!(Deaf is Culture!)'라는 관점에 익숙해져 있는 미국이나 유럽은 부모 자녀가 같은 농인일 경우 농사회에서 굉장히 부러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 가정엔 보통의 농인, 그러니까 부모는 청인이고 자신만 농인인 이들은 가질 수 없는 선물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농인인 농아동은 성장과정에서 자신과 부모의 동질감, 같은 언어, 농사회와의 교류(부모님의 친구들인 농인들을 만나는 것)를 통해 일찌감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왜 나를 농인으로 태어나게 했어요!"라는 원망이 아니라 "엄마 아빠 농인, 나도 농인, 우리 옆집 사람들은 청인"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치 해외이민을 간 한국인 가정의 아이가 "우리가족은 한국인 여긴 외국 땅, 이웃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이라고 정리하는 것과 똑같다. 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부모와 자신이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만나는 첫 우주(부모)가 주는 동질감이 얼마나 그 아이들을 안정시키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농정체성(Deaf Identity)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일찌감치 하나의 언어(한국수어)를 획득하고 그 언어를 기반으로 한국어에 접근한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되고 학습능력도 탁월하여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와 유능함을 갖추게 된다.
 
반면 농부모를 가진 청인아이들은 성장과정 속에서 '왜 우리 엄마 아빠는 내 친구의 엄마 아빠와 다른 걸까?'라는 첫 의문을 만나는 순간 아무도 그 해답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움츠려들고 고뇌하기 쉽다. 병리적 관점이 팽배한 이 사회에서 아무리 좋게 부모를 설명해봤자 결국 옆집 아저씨 아줌마 보다 우리 부모는 무언가 부족한 존재일 뿐이기에.
 
'언어적 소수자로서의 농인'이란 관점이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으니 그간에 농부모의 청인아이들(CODA: Children of Deaf Adult)이 겪었을 방황과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만약 이들에게 누군가가 "너의 부모님은 외국인처럼 언어가 다른 것뿐이다. 부모님은 열등한 사람들이 아니라 외국생활과 같은 힘든 환경을 살고 계신 것뿐이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이가 있었다면 이들의 인생은 더 밝고 힘차게 바뀔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농인들은 대부분 블루칼라이기에 빠듯한 살림에 자녀의 꿈을 키워주기엔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이러한 아이들(농인, 청인 모두)에게 누군가가 재능을 나누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성악과 미술과 중국어와 영어와 태권도와 춤을. 부모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 그리고 자기성장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농사회의 자녀들에게는 필요하다. 그리고 이 일의 대부분은 부모의 언어인 수어를 몰라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역에 함께하는 이들이 늘어나길 소망한다. 농인에겐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농사회의 희망이다.
 
김유미원장 / 한국농문화연구원 원장  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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