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4~9일

6월4~9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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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5월 31일(목) 14:34

월-이가봇 삶에서 에벤에셀 삶으로
본문: 삼상4:19-22, 7:12-14
찬송: 542장

성도의 삶은 이가봇이 아닌 에벤에셀이 되어야 한다. 이가봇이란 '하나님의 영광, 축복, 임재가 떠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가봇은 슬픔 탄식 고통 실패 절망 죽음과 같은 삶을 말한다.
 
에벤에셀은 무엇인가?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 즉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석이란 뜻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어떻게 될까? 지옥갈 자가 천국 가고, 빈궁한 삶이 부해지고, 병든 몸이 튼튼해지고, 슬픔 탄식 한숨 절망 실패는 사라지고, 대신 기쁨 감사 찬송 희망 승리가 찾아오고, 할 수 없는 것도 하게 되고, 질 수 밖에 없는 싸움도 이기게 되고, 죽을 사람도 살게 된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이가봇 상태인가, 에벤에셀 상태인가?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돕고 계신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떠나셨는가?
 
엘리 제사장 시대의 나라와 가정은 이가봇이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원수나라 블레셋과 전쟁하여 패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하나님의 법궤도 빼앗겼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적의 칼날에 한 날 한 시 목이 잘렸다. 그 소식을 접한 98세의 아버지 엘리는 쇼크를 받아 의자에 앉은 채 죽었고, 그 결과 몸이 균형을 잃고 넘어졌고, 그 충격으로 목이 부러졌다. 이 소식을 접한 둘째 아들 비느하스의 아내가 충격을 받아 갑자기 산통이 일어나 해산하다 아이는 살았으나 자신은 죽었다. 이렇게 패배와 수치와 죽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대가 바로 엘리시대요 이가봇시대였다.
 
그러나 사무엘 시대는 에벤에셀 시대였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하나님이 도우셨다. 원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엘리시대의 패전의 치욕을 떨쳐버리게 되었다. 원수를 완전히 굴복시켰고 회복의 역사, 도로 찾는 기쁨이 있었다. 또한 평화가 찾아왔다.
 
같은 성도라도 이가봇과 에벤에셀로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된 회개의 차이이며, 모임의 차이이다(삼상 7:5). 엘리시대는 주님 앞에 모임이 없었고, 사무엘 시대는 모임이 있었다. 기도의 차이이다. 산골여인 한나와 그 아들 사무엘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으나, 주의 종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는 것은 좋아해도,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가서 기도는 없었다. 또한 예배의 차이이며, 감사의 차이이다.
 
엘리는 이가봇의 대명사이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떠나갔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젊은 자식들이 한날 한시에 죽고, 자신도 죽고, 집안이 망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에벤에셀의 대명사이다. 패할 전쟁에서 승리했고 치욕을 영광으로, 적을 굴복시키고, 회복과 평화가 왔다. 원인은 참된 회개, 모임, 기도, 예배, 감사의 차이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들에게 참된 회개와 모이기를 기뻐하는 열심을 주옵소서. 그리고 쉬지 않는 기도와, 중단 없는 예배와 범사에 감사가 회복됨으로, 이후의 삶이 에벤에셀의 삶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태부목사 / 밀양교회

 


 

화-신앙생활에 계기비행하라.
본문: 갈라디아서 1:6-10
찬송가: 379장
 
1996년 11월 어느날이었다. 공군K기지교회 수요저녁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예배를 드리던 중 한 지휘관이 "목사님, 야간비행을 나갔던 비행기 한 대가 보이지 않습니다. 두 대 중 한 대는 창륙을 했는데, 한 대가 레이더에서 사라졌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야간비행 하던 중 선두에 섰던 편대장의 비행기는 창륙을 했지만, 후미에 섰던 이 대위의 비행기는 창륙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비행기의 사고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사고 원인은 '버티고'였다. '버티고'라는 말은 '어지러움'이란 뜻의 비행착각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 야간비행을 할 때 선두에 서는 비행기는 계기판을 보고, 관제사의 지시를 받으며 계기비행을 하게 된다. 그러나 후미에 서는 비행기는 계기비행하지 않고 시계비행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워낙 빠른 속도로 비행을 해야 하고, 앞 비행기와의 간격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야간에는 앞 비행기 꼬리의 불빛을 보면서 시계비행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상레이더에 나타나지 않았던 낮은 구름이 문제였고, 또한 시계비행을 계속해서 의지했던 것이 문제였다. 편대장이 조종하던 앞 비행기는 낮게 낀 구름이 비행을 방해했지만 관제탑의 유도를 받으며 계기판을 보면서 무사히 창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뒷 비행기는 구름 때문에 앞 비행기의 불빛을 놓쳐버린 것이다.
 
이때 빨리 계기비행으로 전환했어야 하는데, 자신의 직감만을 믿고 계속 시계비행을 한 것이다. 뒷 비행기의 조종사가 자신이 거꾸로 날고 있는 것을 잊은 것이다. 순간 하늘의 별빛과 바다의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을 혼동하여 자기의 비행기가 거꾸로 날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내 머리 위에 별빛이 보이네. 그렇다면 하늘 위로 선회해서 다시 창륙 해야지'라고 생각하고는 비행기의 조정관을 당겨서 바다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신앙생활의 시계비행법은 내가 보는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내가 편한 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하고, 계기비행은 하나님을 관제사 삼고 하나님과 늘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계기판 삼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의 변질은 바로 은혜를 떠나는 것이다. 신앙의 변질은 은혜를 망각하며 자기 나름대로 시계비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겨주셨고, 나의 죄와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감추어 주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리고 이 은혜를 깨닫고 사는 것이 믿음생활이요, 신앙생활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오직 관제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한다.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주님 중심으로 삶의 레이더를 재조정하자.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구원받은 저희들이 이제 세상에 현혹되지 않고, 세상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오직 우리의 주관자되시는 주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민철홍목사 / 수색교회

 


 

수-사명을 저버린 요나
본문: 요나 1:1~9
찬송가: 273장
 
요나 선지자의 활동을 기록한 '요나'를 매 주 한 장씩 읽으며 은혜를 나누고 사명을 새롭게 하고자 한다. 요나는 짧은분량임에도 내용이 상당히 뒤엉켜 있다. 선지자는 당연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요나는 그렇지 못할뿐 아니라 억지로 간 니느웨의 선교 사역은 의외의 좋은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 못하지만 그럼에도 오직 순종만이 살 길이다.
 
1.'여호와의 말씀'
 
요나는 "여호와의 말씀이…임하니라(1:1)"로 시작되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4:10~11)"로 끝을 맺는다. 율법서도 '말씀'으로 시작되고(창 1:3), 복음서도 '말씀'으로 시작된다(요 1:1). 예언서를 읽을 때는 '말씀'이 어느 시대에 누구에게 임하여(예언자 이름) 누구에게 전하라(대상자)고 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요나는 "가드헤벨 출신 아밋대의 아들(1절, 왕하 14:25 참고)"이라는 정보 외에는 없다.
 
2.'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자유'

요나는 여호와로부터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1:1)"는 명령을 받고 일어났으나 니느웨는 '큰 성읍'으로 '악독'한 이방이었기에 가기 싫었다. 그는 불순종하여 욥바로 내려가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으나 바다에 던짐을 받는다.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등지고 사명을 거부하는 자유가 있듯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을 추격하여 사로잡는 자유가 있다. 이때에는 인간에게 고난이 뒤따르므로 우리는 요나를 통해 순종을 배워야 한다.
 
3.'내려가는 요나'

하나님을 등지면 '내려가는 삶'을 살게 되고 '던짐'을 당한다. 요나는 욥바로 내려갔고, 다시 배로 내려갔고, 마침내는 배 밑창으로 내려갔다. 환경도 그러하여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던지셔서 배가 깨질 정도였고, 사람들이 배의 물건도 바다에 던졌으며, 풍랑의 원인이 요나임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요나를 '다에 던지매' 요나는 '물고기 뱃속'까지 내려간다. 즉 영, 육, 물질 모두 다 내려가고 던짐을 당하였다.
 
4.'예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도망가는 요나를 추격한다. 그래서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을 때 '큰 바람'을 예비하셔서 바다에 던지셨고, 요나가 바다에 던짐을 당하였을 때에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삼키게 한다. 4장에서는 박넝쿨, 벌레, 동풍을 예비하셔서 요나를 훈련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도 인간을 섭리하신다.
 
5. '요나의 자신 고백'
 
배에 있던 사람들이 광풍의 원인이 요나임을 알고 신분을 묻자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며 나름대로 책임있는 자세로 회피하지 않는다. 이방인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하나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를 보고 계신다.
 
<오늘의 기도>
요나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거부하다가 큰 고난을 당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무조건적으로 순중하는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또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현주목사 / 남영주영락교회


 

목-나를 온전히 내어드립니다
본문 : 사무엘상 6:10-16
찬송가 : 216장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은 여호와의 궤를 빼앗아갔다. 그리하여 언약궤가 블레셋의 다곤 신전으로 옮겨져 다곤 곁에 놓여진 것은, 하나님께는 여간 가슴 아픈 일이 아니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대단히 수치스런 일이었다. 얼핏 보면 우상에게 패한 것처럼 보이나 이것은 이방인들에게 일시적으로 조롱을 당하는 일이어도 이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인생 채찍을 통해 하나님과 마주보는 인생으로 되돌려 생명의 삶을 안겨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블레셋은 최고의 전리품으로 빼앗은 언약궤를 매우 자랑스럽게 다곤 신상에게 헌상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은 다곤 신을 여호와의 궤 앞에 엎어지게 하심으로 다곤 신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항복하는 자세를 취하게 만드셨다. 블레셋인들이 엎어진 다곤을 일으켜 세우자 이번에는 아예 신상을 깨뜨려 버리셨다. 여호와의 손이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와 재앙으로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결국 그들은 더 큰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언약궤를 이스라엘에 되돌려 보낼 계획을 세우게 된다.
 
여호와의 궤를 운반할 새 수레를 끌기 위해서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가 선택되었다. 사명을 맡은 소들은 어여쁜 송아지가 따라나서며 "음매 음매"하며 부르짖는 애절한 소리에도 뒤돌아보며 울거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앞만 바라보고 나아갔다. 이 땅에 생명의 복음을 실어 나르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한다. 인정에 끌려서도, 세상의 유혹에 흔들려서도 안된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부르심에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한다.
 
또한 언약궤를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서 두 마리의 소는 힘과 호흡을 합했다. 신앙은 독불장군 식으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2인3각 경기처럼 동역하는 믿음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 두 사람이 뻣뻣하게 서서라도 하나가 되면 더하기(+) 힘이 발휘되지만,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달게 지고 겸손히 엎드려 하나가 되면 곱하기(×)힘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과 하나가 되면 주님의 능력과 권세가 나를 통해 크고 비밀한 은혜로 역사한다.
 
이윽고 레위인들의 거주지 중에 한 곳인 벧세메스에 언약궤가 도착하자 레위인들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렸다. 온전한 희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명을 감당하고 마지막까지 기쁨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에서 대속하심의 희생으로 영원한 생명을 안겨 주신 우리 주님의 '다 이루었다'의 희생을 깊이 아로새기며, 주님 닮은꼴의 온전한 내어 드림의 헌신을 통해서 믿음나무의 잎을 더욱 짙푸르게 만드는 나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영원한 생명과 승리의 삶을 보장해주시고 안겨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를 충성되게 여겨 안겨주신 사명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하옵소서. 겸손과 눈물의 기도와 항상 나를 쳐서 복종시킴으로 그 사명에 온전한 헌신이 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현희목사 / 팔복산교회

 


 

금-왕의 신앙
본문: 열왕기하 22:1-13
찬송가: 449장
 
성경에는 많은 왕들의 이름이 있다. 이들 왕들은 대부분 악한 왕이었지만 그래도 선한 왕을 꼽고자 한다면 그것은 다윗이나 히스기아 왕과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다윗 왕이나 히스기야 왕도 온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왕의 신앙을 가진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기록된 요시야 왕도 왕의 신앙을 가진 자였다. 그렇다면 왕의 신앙이란 무엇인가?
 
첫째, 성전 중심의 신앙이다.
 
요시야는 예루살렘 성전이 부숴진 것을 보고 수리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 관리하게 하며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수리하게 했다. 또한 요시야는 그의 할아버지 므낫세와 아버지 아몬이 숭배한 우상을 성전에서 내어다가 불에 태워 버리고, 산당을 무너뜨리고 사제들까지 폐하였다. 이처럼 요시야는 철저히 성전 중심의 신앙을 지켰다.
 
우리가 성전 중심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전에 열심히 모여야 한다.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꼭 성전에 나와서 예배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렇다. 왜냐하면 하박국 2장 20절에 나와 있듯이 여호와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에서 예배하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
 
둘째, 말씀 중심의 신앙이다.

성전을 수리하던 중에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 안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사반이 받아 요시야 왕 앞에서 읽었다. 이 때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옷을 찢으며 회개했다. 그리고 말씀중심으로 살았다.
 
큐티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말씀의 중요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지만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순종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 내 가정, 내 직장과 사업, 자녀들, 하는 일에 복을 받는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반대로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이처럼 말씀중심으로 사는 것이 복이다.
 
셋째, 예배중심의 신앙이다.
 
요시야 왕은 성전 안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백성들 앞에서 읽게 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할 것과 계명을 지키기로 언약을 세웠다. 그리고 백성들도 언약에 따르기로 약속했다. 왕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회개하고 백성들과 함께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며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광경을 생각할 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대하고 긴급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행동은 예배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동적인 예배를 드리는 예배중심의 신앙인이 되기를 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도 왕의 신앙을 갖고 살게 하옵소서. 성전에 열심히 모이는 성전중심의 신앙,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말씀중심의 신앙,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중심의 신앙으로 살게 하옵소서. 특히 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런 신앙으로 이 나라를 이끌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선우목사 / 서현교회

 


 

토-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본문 : 디모데전서 2 : 1~4
찬송가 : 550장
 
6월은 애국의 달이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야말로 애국의 첫걸음이다. 우리 민족의 근대 역사에서 그리스인은 애국의 선봉에 섰다. 조선말기로부터 일제 강점기와 6ㆍ25를 지나 오늘의 민족적 부흥을 이루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신앙하며 수없이 기도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아름다운 신앙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며 왜 기도해야하는지 말씀하고 계시다.
 
첫째로 온 백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1절). 백성들의 어려운 문제를 간구하고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기도하고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대신 회개하며 중보의 기도를 하고 또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저희들 삶의 터전으로 주시고 대한민국의 자유국가를 이루어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오나 이 백성이 때로는 어리석고 우둔하여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했고 지금도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한 모습입니다. 분단의 고통이 있습니다. 양극화의 골이 갈수록 깊어 갑니다. 갈등과 분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의 욕심과 잘못된 지식과 우상숭배의 죄악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백성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통일민족! 복지국가! 선교한국! 되게 하옵소서!"
 
둘째로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2절). 왕은 하나님의 율법을 등사하여 옆에 두고 늘 읽어야 한다. 대통령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대통령은 사리사욕을 좇는 것이 아닌 백성을 섬기는 권력자가 되어야 한다. 또 사회의 각계 각층에 있는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장관, 국회의원, 시장, 군수, 면장은 물론 학교장 기업의 사장등 각 기관 단체의 지도급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그 직책을 감당하고 섬김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지도자를 위한 기도는 지도자를 향한 진정한 응원이 되기도 하고 진정한 감시가 되기도 할 것이다.
 
왜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가?
 
본문 2절에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처럼 나라가 안정되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라 통치해야 신앙생활도 안정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3절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4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백성의 죄와 허물을 품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허운목사 / 대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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