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8일~6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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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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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5월 24일(목) 10:55

월-인생을 아름답게
본문: 전도서 3:9~14
찬송가 : 552장
 
계절의 여왕 5월 만물이 생동하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당신의 인생은 아름답고 행복한가?
 
가장 행복하고 영화로웠을 것 같은 인생을 살아온 솔로몬은 '헛되다'는 말을 다섯 번 반복한다. 솔로몬이 누구인가?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이었다. 세상의 모든 부귀와 권세를 소유했고,모든 명예와 존중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다. 이런 솔로몬의 인생이 헛되다면 세상에서 어떤 인생이 가치있고,행복한 것일까?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아지고 지혜자도 우매자와 다를 바가 없이 헛될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것이 솔로몬의 진심일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가르치던 솔로몬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나님을 등졌기 때문이다. 말씀을 떠난 길에서 느끼는 허전함이다. 정작 자기 자신은 아비 다윗의 훈계를 듣지 않았다. "내 아들아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왕상 2:2~3)."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솔로몬을 불러 유언으로 당부한 말이다. 왕위에 오른 아들에게 왜 유능한 통치자가 되는 법이나 전쟁의 기술이나 인맥을 관리하는 법이 아닌 하나님 앞에 충성된 대장부가 되기를 가르치고 당부했겠는가? 다윗의 일생에서 체험한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증언이요 당부였다. 그런데 전도서에 나타난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않았다. 자기 기쁨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호탕한 왕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막대한 부와 권세와 통치자로서는 대성공하였으나 자기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인생이 되었다. 성경은 말한다. 많은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다고.
 
그런데 바울의 고백을 보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딤후 4:7~8)…" 얼마나 멋지고 당당한가! 온갖 시련과 수많은 방해와 고난을 넘으며 인내의 삶을 살아온 바울은 감사하며 상급을 기다리고 있다. 인생의 가치와 가슴 벅찬 즐거움은 소유와 누림에 있지 않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인생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고백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사람마다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내가 알았도다."
 
솔로몬은 이 평범한 비밀을 너무나 많은 세월을 보내고 헛된 수고 끝에서야 깨달았다. 그의 인생이 망가진 뒤에야 하나님 없는 인생이 헛됨을 깨달았다. 말씀 안에서 값진 인생,감사하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시길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아버지의 섭리를 따라 아름답게 펼쳐진 대 자연을 봅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달려가 오늘의 수고와 열심이 아름다운 기쁨의 열매가 되는 아름답고 복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재규목사 / 새청교회


화-너는 행복 자로다
본문: 신명기 33:24-29
찬송: 435장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가 죽기 전에 열두 지파에 대하여 축복한 말씀이다. 특히 본문은 아셀 지파에 대하여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받은 자가 누구뇨"라고 했다. 필자는 언젠가 본문을 읽는 중에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라는 문장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꿈틀꿈틀 살아 움직여서 걸어와 눈으로 가슴으로 들어온 체험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는 말씀이 이루어진 현실을 체험하는,실로 놀라운 은혜의 순간이요 신비의 순간이었다. 그 이후부터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언제나 배가 불렀고 늘 말씀이 달고 맛이 있다.
 
하나님과의 동역한 삶을 살기에 행복한 자이다.
 
애굽에서 있었던 유월절 사건,홍해를 건넌 기적,아멜렉과의 전쟁에서의 승리 등 기적과 능력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했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함께 하기에 행복하다. 모세는 아셀 지파에게 다자한 복을 허락했는데 우리는 전도를 해서 영적인 복음의 자녀를 많이 둠으로 '나는 행복자입니다'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아셀 지파는 그의 형제의 기쁨이 된다고 했다. 바울은 또한 형제들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였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을 전하여 만나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 받고 천국백성이 되게 하는 기쁨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 발이 기름에 잠기는 축복을 받았기에 행복한 자이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선지자,왕을 임직할 때에 양각 나팔이나 소뿔에 기름을 채워 머리에 부었는데 그 기름이 흘러 수염을 적시고 흘러내려 발까지 기름에 잠기게 된다. 신약에 와서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5:14)"고 했다. 기름은 사람의 몸을 부드럽게 하며 상처를 낫게 하는 기능을 한다. 여름철에 모기나 곤충류에 물려 가려울 때 올리브유를 바르고 문질러 마사지를 하면 금새 가려움증이 사라진다.
 
여호와의 구원을 얻었기에 행복한 자이다.
 
핍박자였던 바울이 사도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에 행복자이다.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이 안 믿어져서 못 믿는 사람이 많은데 구원받아 천국백성이 된 것을 감사하고 복음 전하는 자 되었으니 감사하고 문빗장을 철과 놋으로 우리 사는 날까지 함께 하시니 행복한 자이다. 보혜사 성령님이 내 안에 임재하시는 삶,천국에 우리의 집이 예비되어 있음을 믿으며 그 천국을 사모하며 "나는 행복한 자입니다"라고 고백해보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구원의 백성이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복음의 자녀를 많이 생산하게 하시고 성령의 기름으로 삶을 부드럽게 하며 주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덕순목사 / 청화교회


수- 영원한 얼굴
본문: 행 1:14          
찬송가: 435장
 
백 이십명이 모인 예루살렘 다락방에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함께 참석했다. 이것은 마리아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마지막 얼굴이다. 그 후에는 마리아가 성경에 다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그 후 오래지 않아 마리아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보여준 마리아의 마지막 얼굴은 교회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얼굴이다. 그녀의 얼굴은….
 
첫째,기도자의 얼굴이다.
 
일찍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천사로부터 수태통보를 받는 경건한 얼굴로 성경에 등장한 마리아는 삼십여년이 지난 오늘 예루살렘 다락방에 기도하는 얼굴을 남긴 채 성경에서 퇴장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얼굴은 기도하는 교회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얼굴이었다. 예수님의 마지막 얼굴도 기도하는 얼굴이었으며 수많은 성도들의 마지막 얼굴 역시 기도하는 얼굴이었다. 우리가 남길 마지막 얼굴도 기도하는 얼굴이어야 한다.
 
둘째,전도자의 얼굴이다.
 
마리아는 야고보를 비롯한 그의 아들들을 모두 인도해서 다락방에 참석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에는 예수님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그의 아들들이 오늘 예루살렘 다락방에 참여케 된 것은 물론 성령의 역사이지만 이러한 역사를 위한 마리아의 오랜 노고가 없이는 이 일이 쉽게 이루어졌으리라 볼 수 없다. 그의 아들들이 오늘 이 다락방 모임에 동참하게 된 것은 마리아의 전도의 결실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다락방에서 보여준 마리아의 마지막 얼굴은 그의 아들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전도자의 얼굴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얼굴은 전도하는 교회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전도자의 얼굴이다. 우리가 남길 마지막 얼굴도 전도하는 얼굴이어야 한다.
 
셋째,화해자의 얼굴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모친이라는 신분때문에 독선적이거나 배타적인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불협화음을 빚어낼 수도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다. 그는 오늘도 자기의 아들들을 데리고 백 이십명이 모인 회중 속에 한 사람의 평범한 회원으로 다른 성도들과 더불어 참석했을 따름이다. 즉 다락방에 남기고 간 그의 마지막 얼굴은 화해를 보여준 얼굴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얼굴은 화해를 추구하는 교회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화해자의 얼굴이다. 혹자는 교회의 설립자라는 이유로,혹자는 교회 유공자의 가족이라는 신분때문에 특정 계급처럼 자처하여 교회의 화평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숭고한 얼굴은 '더불어'의 정신으로 형제들과 함께 교회를 섬기는 화해자의 얼굴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여,저희가 떠난 후에도 길이 빛을 발하는 영원한 얼굴을 남기게 하옵소서. 기도자의 얼굴,전도자의 얼굴,화해자의 얼굴로 21세기의 진정한 교회상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명안목사 / 아산교회


목-성령이여!
본문 : 사도행전 2:42-47
찬송 : 190장
 
오늘 본문에서 성령을 받은 교회와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삶을 보면 그가 어떤 마음의 소유자인지 판단할 수 있다.
 
기도하게 하소서!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 쓰니라." 성령충만함을 받은 사람도 기도에 힘쓰지 않으면 감격과 능력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기도의 불이 꺼지면 모든 것이 다 꺼져 버린다. 교회와 성도는 기도하기를 쉬어서는 절대 안된다. 우리의 신앙은 기도와 정비례한다. 기도해야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다. 기도가 부족하면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 칼을 휘두르는 혈기를 부린다. 뜨겁게 기도하는 것이 성령충만의 모습이며 성령충만할 때 뜨겁게 기도할 수 있다.
 
사랑하게 하소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상호간에 이루어진 영적인 일치는 서로 필요한 물건을 공유하는 생활이었다. 공산주의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그들은 자발적으로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고,공통의 유익을 위하여 재산을 내놓았다. 초대교회의 유무상통은 욕심이 배제되어 오직 사랑의 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사랑하면 내 것 네 것이 없다. 우리의 것이다. 기독교 공동체는 개인의 욕심을 나타내면 와해된다. 나보다도 먼저 남을 생각하는 사랑이 있을 때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성령충만은 사랑의 모습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한다. 스데반과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용서와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사랑의 사람인가? 싸움의 대상인가? 개인적인 욕심과 감정을 버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자. 사랑은 성령 충만과 성령의 열매다.
 
모이게 하소서!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성령을 받은 초기 예루살렘 교인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여 유대 전통과 관습에 따라 행동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는 성전과 성전 바깥 뜰 동편에 있는 솔로몬 행각이었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예배와 찬양을 드렸다. 그러면서 성전에 오는 유대인들을 전도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에 의해 자발적으로 기쁨이 충만한 상태에 모였다. 때로는 목숨을 내놓고 순교적인 자세로 모였다.
 
성령충만한 성도는 예배시간이 기다려진다. 성령 받으면 모이는 것이 행복하다. 모이는 일에 온 힘을 다하자. 교회의 모임을 통해서 건강해지고 건전해지자. 교회보다 성령의 역사가 더 강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교회가 언제나 최상이고 일차적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성령이 충만하여 능력있는 성도들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 성령을 충만히 받아 능력있는 성도가 되자. 눈에 보이는 성령의 사람이 되자.
 
<오늘의 기도>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로 성령충만한 성숙한 성도가 되어,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 하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영준목사 / 김포중앙교회


금-노동과 행복
본문: 살전 3:10
찬송가: 589장
 
노동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원리이다. 십계명에 "엿세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고 하였으니 노동의 원리야말로 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 주님께서도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고 하셨다. 바울사도 역시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다.
 
인류문명은 노동의 산물이다. 인생에 있어서 노동은 행복을 가져오고 노동에 의해서 행복이 가능해진다. 춘추사기에 의하면 "농부가 분배받은 땅에서 소를 몰고 밭을 가는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했다. 부지런히 일함으로 휴식의 즐거움이 있고 평안한 수면이 보장된다. 중요한 것은 노동의 큰 뜻을 근본적으로 터득하면서 보다 더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다.
 
첫째,사명감으로 일한다.
 
노동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땀 흘리는 수고에서 사명감을 가질 때 고되고 싫증나는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 누구나 인생을 보람있게 살려면 사명적 자아확립이 필요하다. 루터와 칼빈도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소명을 느낄 때 참 만족이 온다"고 했다.
 
돌을 다듬고 있는 석공 세 사람의 얼굴 표정이 제각기 달랐다. 한 사람은 불평불만이 가득 차 있었고 또 한 사람은 무표정 했다. 세 번째 사람은 희열이 넘쳤다. 한 기자가 이들을 보며 이상히 여겨 그 연유를 물었다. 한 사람은 "나는 죽지 못해 이 일을 합니다. 이 목구멍이 나의 원수입니다"라고 빈정거렸다. 그 다음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해야 됩니다"라고 답했고,세 번째 사람은 "힘은 들지만 내가 다듬은 돌로 주님의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영국 바울대성당을 지을 때 이야기이다.
 
아무리 거창한 사업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영달만을 위한 것이라면 사명감이 결여된 처사이다. 가치가 없다. 베토벤은 "나의 예술이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바쳐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한 바울사도의 교훈을 되새기자.
 
둘째,창조적인 머리로 일한다.
 
힘으로만 일하면 고되기 마련이다. 머리로 일할 때 창조적인 작업이 성사된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았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만유인력설을 내놓았다. 라이트형제는 새를 보고 비행기를 만들었고,와트(Watt)는 끊는 가마솥에서 내뿜는 수증기의 힘을 보고 증기기관차 만드는 원리를 알게 되었다. 똑같은 사물을 대하더라도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창조적인 사고(思考)가 번영과 행복을 약속해준다.
 
셋째,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한다.
 
감사가 없으면 얼마 못가서 그 일에 지치게 된다. 감사하며 땀 흘리는 자에겐 성공이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땐 불행이 있을 뿐이다. 감사는 행복을 받아드리는 마음의 그릇이다. 사람의 진정한 행복은 근면한 노동에서 온다는 교훈을 되새기자.
 
<오늘의 기도>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저들에게 일터를 주시고 일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사명감에서 창조적으로 감사하게 하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재훈목사 / 서부중앙교회


토- 무성한 가지
본문: 창세기 49:22
찬송가 : 428장
 
어느 가족의 실제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지팡이로 때려 허리를 다치고 7년을 누워 있게 되었다. 어머니의 대소변을 아들이 받아낸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그 아들이 자기 부인을 아버지처럼 똑같이 때려 허리를 다치게 했다. 그 딸이 그것을 보고 자라며 '난 절대 아버지 같은 남자와 결혼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술을 마시지 않는 착실한 남자를 만난다. 그런데 그 남자가 사업이 실패하자 술을 먹게 된다. 그리고는 아내를 때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이처럼 나쁜 삶의 모습이 유전처럼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오늘 본문에도 비슷한 사람이 나온다. 바로 요셉이다. 이 가정에는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안 좋은 유전이 있었다. 첫째는 거짓말이다. 아브람은 자기 부인을 여동생이라고 속링다. 이삭도 아버지와 똑같이 한다. 둘째는 성적인 문제이다. 디나가 성폭행을 당하게 되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 르우벤이 작은 어머니 빌하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셋째는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할아버지에게 75세에 자식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집은 많은 상처가 있었다. 요셉도 마찬가지의 환경에 처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성적인 유혹을 받는다. 요셉 역시 옥에서 3년을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또한 형들이 그를 17살의 나이게 종으로 팔았다. 큰 상처이다. 그러나 요셉은 이 모든 것을 단절한다. 이러한 단절의 비결은 그가 샘 곁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는 문장이 요셉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등장한다.
 
죽음 앞에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며 '요셉은 무성한 가지'라고 한다. '가지'란 말을 RSV성경에서 보면 대문자로 나온다. 마치 예레미야서에 가지가 예수님을 가리키듯 말이다. 여기서 젠센이란 신학자는 요셉과 예수님의 비슷한 점이 1백30가지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화해자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오셨듯 요셉 역시 가족 안에 화해자였다. 그는 이전에 흐르던 좋지 않던 습관들을 끊고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는 내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역사를 썼다.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어 많은 이들을 먹이듯 요셉을 통해 많은 이들이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
 
우리의 가정이 샘 곁에 심겨진 무성한 가지로 자라나가기를 소망한다. 우리 가운데 흐르는 나쁜 습관들이 끊어지고,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영향력이 우리를 통해 가정과 이웃,우리 동네,그리고 우리가 밟게 되는 모든 지경가운데로 퍼져나가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려,대대로 이어지는 나쁜 습관들을 버리게 하옵소서. 우리와 우리식구들이 하나님과 늘 함께함으로 무성한 가지로 자라나게 하시고,맺히는 열매들을 통해 세상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한호목사 / 춘천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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