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의 덫

자리의 덫

[ 목양칼럼 ] 목양칼럼

박봉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21일(월) 16:54
몇 해 전 총회가 임박해서 뜻밖의 전화 한통을 받았다. 총회 한 부서의 부장으로 출마를 했으니 지지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잘은 모르지만 그분은 그 부서의 부장으로는 전문성이라는 면에서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며칠 뒤 또 다른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역시 그 부서 부장으로 출마했으니 지지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분은 아직 총회 부장을 하기에는 이른 듯해 보였다. 그 후 이와 유사한 전화를 두 통을 더 받았다.
 
총회 기간 중 그 부서회의에 참여했다. 회의 자리를 둘러보니 정작 부장을 할 만한 분들이 여럿 눈에 띄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분들은 모두 점잖게 침묵하고 있었다. 당신들이 부장을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누구도 그분들을 추천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전화했던 네 사람은 이미 사전 운동을 많이 해서인지 여기저기서 추천하고 지지발언이 이어졌다. 결국 열심히 사전 선거운동한 분이 부장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교계가 점점 세상을 닮아가는 것만 같다. 자리에 대한 욕심이 그렇고, 그 자리를 얻고자 애쓰는 몸부림들이 그렇다. 실제로 선거운동이 과열되면서 불법과 편법이 자행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말로는 문제 제기를 하면서도 대부분 묵인하고, 또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동조하기도 한다. 이러는 사이에 세상 정치판에서나 볼 수 있는 일들이 교계 안에서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자리의 덫'이 있다. 자리에 대한 욕심과 그 자리를 얻고자 애쓰는 몸부림 속에 무서운 자리의 덫이 있다. 우선 주의 일꾼들로 하여금 사명보다 자리에 관심을 갖게 한다. 실제로 근자에 교계의 관심사는 '선거'가 되어버렸다. 노회의 주관심사는 봄에는 총대선거요, 가을에는 임원선거이고, 총회의 주관심사 역시 부총회장 선거와 각종 자리 배정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힘써서 추진해야 할 사역들은 관심 밖이 되어 버렸다.
 
무서운 것은 주의 일꾼들로 하여금 소명의식을 잃어버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실 주의 일꾼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자리로 부르셨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신을 그 자리에 세우셨다는 소명의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기가 그 자리에 오르고자 스스로 출마했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선거운동을 했기 때문에 철저한 소명의식을 갖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주의 일꾼들로 하여금 참된 섬김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게 만든다는 점이다. 주의 일꾼들은 주요 선생이시지만 발을 씻기신 주님의 본을 받아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바라던 자리에 힘써서 오른 사람들은 그 자리가 주는 달콤한 권력(?)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는 행태를 보이기가 쉬운 것이다.
 
누가복음 14장 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끝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주의 일꾼들은 끝자리에 앉으려고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우선 자리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높은 자리를 탐한다든지 그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내가 있는 그 자리를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로 만들어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주의 일꾼도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데 그 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자리에 앉히신다는 말씀이다.
 
목회의 이력이 붙어가면서 점점 내게도 자리에 대한 유혹이 거세져 감을 느낀다. 그리고 내 안에도 자리에 대한 욕심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본다. 자칫 눈이 멀어 자리의 덫을 보지 못하고 거기에 걸려들까 두렵다. 다시금 "끝자리에 앉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하겠다.

박봉수목사 / 상도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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