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평화를 위한 섬김의 제사

하나님의 평화를 위한 섬김의 제사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 칼럼

송인동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21일(월) 16:20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5-16) 죄인들을 위하여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신 예수님처럼,성도들은 자신에게 불편하고 때로는 위험하고 외로운 성문 밖의 길로 찬송하며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지난 15일 박위근총회장을 비롯한 총회 인권위원회와 사회부 위원들과 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총회 설립 1백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하나로 '고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 및 5ㆍ18 광주 민중항쟁 제32주기 추모예배'가 호남신학대학교에서 드려졌다. 박위근총회장은 설교에서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참된 경건임을 강조하였다. 순수하고 경건한 신학도로 1980년 5월 군부대 교회에 시무하던 문 전도사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다 공수부대의 살육으로부터 생명들을 구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고 후에는 도청 탄약고의 폭발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숨졌다.
 
한경직목사 외 33인이 1963년 한일회담 반대성명을 낸 것을 서두로 군사독재 정권과 교회 간의 긴장의 수위는 지속적으로 높아져,1970년대 말에는 방한한 카터 대통령을 본교단 조원곤부총회장이 교계 대표들과 함께 만나는 등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이 긴박하게 계속되었다. 유신독재를 잇는 신군부의 등장을 반대하던 기독 교수들과 학생들,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희생도 1980년 5ㆍ18을 그 정점으로 하여 지속되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민주화 과정에 기꺼이 짊어진 고난에도 불구하고,특히 1980년 하나님의 평화를 위하여 목숨을 제물로 섬김의 제사를 드렸던 목사와 성도들이 많았음에도,학술토론회 등에서는 여전히 개신교 인사들의 역할에 대한 조명이 미흡하다. 이에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고난의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던 헌신자들을 찾아내고 증언을 채록하는 것이 필요하다.
 
1980년 1월 우리 총회는 '80년대를 향한 교단의 입장'이라는 총회장 메시지를 통해 군부개입이 없는 민주화를 촉구하였다. 그해 5월 신군부의 시퍼런 서슬에 신ㆍ구교를 비롯 종교계에선 성명서 하나 내놓지 못하였다. 5월 17일 본교단 총회(총회장 조원곤 목사,양림교회)는 "정부는 전 국민의 여망인 민주화를 구현하기 위한 일정을 단축, 선명히 할 것을 촉구한다","국군은 군의 본연의 임무인 국토방위에 전념해 주기 바란다” 등 7개항을 전국에 공개 호소하였다. 5월 19일 두 번째 호소문에서는 광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국 교회의 기도를 요청하고 곧 이어 대표단과 전국 교회의 헌금을 광주 현지에 보냈다. 가톨릭의 김수환추기경이 5월 23일에서야 전국 주교모임에서 교회에 기도 요청을 하였다는 점에서,우리 총회가 두 차례에 걸쳐 공개적인 호소 형태로 성명을 냈다는 것은 당시 큰 위험을 무릅쓴 선구적 조처였다.
 
신군부는 광주를 위한 기도회,예배,구호 자체도 감시하고 탄압하였지만,조원곤 총회장은 광주를 위한 위문단과 전국 교회의 구호금을 종교계 중 가장 발 빠르게 5월 29일에 이어 두 차례 현장에 전달하였다. 8월 22일 조원곤총회장은 "교회학교 교육을 과외활동으로 간주하는 국보위의 과외 일소 지침에 대하여" 대표단을 신군부에 보냄으로써 교회교육이 예외로 인정받게 되었다. 무고한 많은 희생이 발생한 양림교회를 비롯한 광주의 교회들은 이미 5ㆍ18 초기부터 구호활동을 적극 전개하고 있었으나, 5월 26일에는 본교단 조원곤총회장을 비롯한 초교파 인사들이 모여 광주기독교비상구호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사망자,부상자,구속자를 위한 모금과 구호가 이루어졌다. 또 같은날에는 YMCA와 YWCA 지도자들이 중심이 된 십 수 명의 광주의 목회자,장로 등이 무력행위를 막고자 죽음의 행진을 감행하였다.
 
신군부의 끝없는 위협으로 1983년 광주를 떠나기까지,하나님의 의와 선을 설파하였던 총회장 조원곤목사처럼,지금껏 역사에 묻혀있던 인사들의 섬김의 사역이 이제 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송인동교수/호남신대ㆍ아시아태평양YMCA동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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