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와 한국

알카에다와 한국

[ 이강근의 중동이야기 ] 이강근의 중동이야기

이강근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15일(화) 16:23

'알카에다'는 중동에 기반을 둔 세계 최대 테러단체다. 보통 이슬람의 4대 테러단체로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아프카니스탄과 이란의 무자헤딘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이다. 그 중 알카에다가 세계의 공적 1호가 된 것은 2001년 9ㆍ11테러다. 여객기를 탈취해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해 3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미국 국방부를 목표로 항공기 납치 테러사건을 일으킨 동시다발 테러 사건이다. 미국은 당시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해 10년이나 쫓았고 마침내 작년 5월 2일에 빈 라덴을 사살함으로 작전을 마쳤다. 그의 현상금만 자그마치 5천만불(6백억원)이었다.
 
알카에다는 원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항하여 결성된 이슬람 무장단체였다. 197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을 때 아랍 의용군으로 참전한 오사마 빈 라덴이 결성한 테러조직이다. 1991년 걸프전쟁을 기점으로 반미투쟁을 시작해 파키스탄ㆍ수단ㆍ필리핀ㆍ아프가니스탄ㆍ방글라데시ㆍ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미국ㆍ영국ㆍ캐나다 등 총 34개국에 달하는 국제 테러조직이다.
 
1993년에는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 건물 폭파 사건, 같은 해 사우디 아라비아 주둔 미군기지 폭파사건,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폭파사건, 예멘 근해의 미함 콜 습격사건을 주도한 알카에다. 그리고 결국 2000년에 미국 세계 무역 센터 생물학무기 테러 사건을 벌였고 2001년에 9ㆍ11 미국 동시다발 테러를 가해 세계를 충격 속에 몰아 넣었다. 알카에다에 관한 우리의 악몽은 2004년 김선일 피살사건이다. 물론 9ㆍ11 테러 때도 한국인이 18명이 희생되었다. 대부분이 젊고 유망한 인재들이었다.
 
중동 이슬람의 테러에 우리가 노출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그러나 피해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에서 체포된 알카에다 조직원은 2002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개최된 월드컵 대 테러공격을 계획했다가 동조자를 확보하지 못해 시도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알 카에다가 한국에 와서 테러를 시도한 사례가 더 있다. 9ㆍ11 테러를 주도한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KSM)는 1995년도에 한국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미국 국적기 4대 등 비행기 12대를 납치해 태평양 상공에서 폭파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다행이 테러에 쓰일 각종 장비들을 보관한 필리핀 마닐라의 알 카에다 조직원 아파트가 폭발하는 바람에 '작전'이 수포로 돌아갔다. 만약 그의 '작전'이 성공했었다면 사망자는 4천명이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망자의 절반은 우리 한국인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9ㆍ11테러 이후에야 밝혀졌는데, 한국에서 계획한 테러에 실패한 이후 9ㆍ11테러를 기획했다고 한다.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는 2003년 파키스탄에서 체포된 뒤 현재까지 미국에 수감돼 있다.
 
물론 무슬림의 대다수인 이슬람 국가들의 정부와 종교 지도자는 표면적으로는 알카에다의 테러행위를 비판한다. 그러나 이슬람을 위협하는 서방세계나 선교적 기독교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다. 특히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서방세계의 행위에 대해 많은 무슬림들이 심정적으로 알카에다에 공감한다.
 
현재 한국은 세계 선교대국 중 하나다. 그리고 이슬람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한국교회가 부흥하면 할수록, 한국이 세계 선교에 기여도가 커질수록 우리는 이슬람의 위협에 더 노출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슬람 테러에 주의를 갖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강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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