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유럽이 부러운 이유

17. 유럽이 부러운 이유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김유미원장
2012년 05월 07일(월) 15:19

언어는 경험,생각,느낌과 같은 정보를 고유의 방식으로 개념화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다. 수어도 이와 같은 과정을 시각적인 방식을 통해 처리하는 고유한 언어이며 음성언어에 의존하지 않는다. 즉 어떤 정보를 음성언어의 개념화 과정을 빌려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시각적인 감각으로 처리(개념화)하고 시각적인 방법을 통해 표현한다. 수어(수화)를 배운 청인이 농인과의 소통에 실패하는 데는 많은 변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주요한 실패원인은 자신의 생각(정보)을 수어로 전달할 때 자꾸 음성언어에 일단 입력했다가 수화로 변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화언어 고유의 특성(도상성(圖象性))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오류가 나오게 된다. 다음은 인터넷을 통해 공식적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한국수화사전의 어휘 중 하나이다.

   

이 수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수화를 본 농인들은 모두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그런데 이 수화사전은 위의 수화를 '자궁'이라고 적어놓았다. 즉 자궁의 한국어적 의미인 '아기','집'을 그대로 수지기호로 옮겨놓은 것인데 이것은 수화언어의 가장 큰 특징인 도상성(圖象性)을 이해 못했거나 무시한 결과물이라 하겠다. (한국수어에서 '자궁'은 통상적으로 주먹 혹은 엄지와 검지를 핀 주먹의 바닥 쪽을 배꼽아래 댐으로써 표현된다.) 문제는 이렇게 활자화되고 특히나 정부의 공식기관을 통해 인터넷으로 제공됨으로써 수화언어에 대한 자존감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농사회(Deaf Community)가 결국에는 이런 결과물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데 있다. 
 
정부의 예산을 통해 만들어진 수화관련 자료들은 이제까지 한국어의 주요 어휘를 선택하고 그 어휘를 수화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조사하거나 혹은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고 규정짓는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수화언어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법은 먼저 편안한 대화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화되는 한국수어화자들의 대화를 채집하고 그 데이터를 축적 분석하여서 한국수어 고유의 문법패턴과 어휘들을 규명해가는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분명한 언어철학과 수많은 세월과 지속적인 예산지원이 전제되어야 가능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풍토가 아직 조성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뜻있는 농인들은 이러한 풍토가 당연시되는 유럽을 부러워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우리 한국의 농인들은 늘 지고 산다.

김유미원장 / 한국농문화연구원 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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