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손(手)에 묶인 한국수어

15. 손(手)에 묶인 한국수어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4월 24일(화) 14:34

수년전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인 미국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당시 그의 한국인 아내는 나를 '핑거 랭귀지(finger language) 선생'이라고 소개하였다. 한영사전에는 수어(手語)의 의미로 '핑거 랭귀지(finger language)'도 등재되어 있으나 오늘날 훨씬 보편화되고 있는 어휘는 바로 '사인 랭귀지(sign language)'이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비주얼 랭귀지(visual language)'라는 개념 안에서 수어의 위치를 확인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사인 랭귀지(sign language)란 개념이 갖는 미덕은 수화언어를 '손'에 묶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어의 경우 '수어(手語)'라는 명칭 외에 다른 대안이 현재 없는 상태이다 보니 '수화'에서 '수어'로의 명칭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수어가 손(手)에 갇혀 있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수어는 손(수지기호)중심으로 연구되어왔고 그 과정에서 한국수어의 진정한 문법인 비수지기호(Non-Manual Signals)가 간과되어 왔는데 이러한 결과들로 인해 한국수어는 많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수많은 수화책이 있고 심지어 정부의 예산으로 책들이 나오고 있으나 대부분이 손 중심의 정보물이어서 수화언어의 문법핵심인 비수지기호가 외면당하거나 단순히 감정의 강약을 표현하는 도구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각언어인 수어의 문법장치는 비수지기호이다. 실제로 청인들이 농인과의 소통에서 실패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비수지기호의 문법장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 원인이 있다. 대부분의 청인들은 손을 통해서만 소통하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어로 소통할 때 상대방의 얼굴표지나 몸의 전환 등을 읽어내지 못하면 전혀 엉뚱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한국수어의 문법장치인 의문문 표지와 평서문표지를 배워보았다. 흔히 청인들이 "입니까?"의 뜻으로 알고 있는 한국수어의 손짓(수지기호)은 실제로 '질문(하다)'라는 의미이며 흔히 무언가를 물어보기에 앞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라는 문장을 수화로 할 경우 이렇게 된다.
 
'질문''#휴지(쉼)#''세상''에서(장소)''제일''소중하다''무엇''#의문문 표지#'.
 
결국 의문문은 얼굴의 표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턱이 당겨지고 눈은 조금 커지고 눈썹은 위로 올라가는 그 표지들이 모여 의문문을 완성한다. 
 
비수지기호는 한국수어의 핵심이다. 양적인 차원에서는 수지기호가 비수지기호보다 훨씬 많아 보이지만 한 방울의 액체가 비커 안에 있는 전체 액체의 색깔을 바꿔버리는 것처럼 비수지기호가 의미의 화학적 변화를 주도하는 중요한 변인임을 기억해 준다면 수화언어에 대한 연구와 접근이 농인들의 실제언어인 한국수어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수어를 풍부하게 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지난 호에 제시한 자료사진 A, B, C 의 수지기호는 모두 동일하게 '맛있다'이다. 반면 비수지기호(NMS)에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변화를 만들어낸다. A에는 의문문표지가 드러나 있으므로 '맛있나요?', B에는 평서문표지가 드러나 있으니 '맛있어요'이다. 그리고 C에는 B와 마찬가지로 평서문 표지가 드러나 있는데 거기에 부사적 장치가 첨가되어 있어 '와! 아주 맛있어요!'라는 뜻이다. 아주 맛있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맛있는 상황에서 드러나는 표지가 들어 있다.


김유미원장 / 한국농문화연구원  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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