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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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 최종률장로의 빈방이야기

최종률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4월 03일(화) 11:44
평창동에 있던 연예인교회(현 예능교회의 전신)에서 극단 '증언'의 제2회 정기 공연작 '루터'의 연습이 시작됐다. (워낙 고도의 연기력을 요하는 작품이어서 기성배우들을 여러 사람 초빙했는데 주인공 루터 역은 당시 중견 연극배우로 신학을 하고 있던 전아 전도사가, 루터의 아내 카테리네 역은 탤런트 허진 씨가 맡게 되었다.)
 
연습은 시작되었지만 루터교 총회에서 지원받은 돈으로는 극장대관료 계약금과 진행비도 빠듯했다. 기독공보와 극동방송을 비롯한 교계 언론매체들에 후원을 요청하고 기사화와 방송출연을 부탁하는 것으로 홍보를 시작했으나 당장 가시적인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개막일은 다가오는데 연습 이외에 해결된 것은 별로 없었고 그러다 보니 기도회를 할 때마다 눈물 범벅이 됐다.
 
그러던 어느날, 연습장으로 어느 낯선 장로님 가족이 찾아왔다. "방송을 듣고 왔노라"고 하시면서 귤 한 박스를 내려놓더니 물질적으로는 도울 형편이 못돼서 가족 찬양으로라도 격려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날 장로님 가족이 들려준 찬양 한 곡과 사랑이 담긴 귤 한 박스가 전해준 감동은 어떤 격려들보다 값지고 소중했다. 그 후로 모두들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한 마음으로 연습에 몰두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사건을 계기로 어려운 문제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 둘 해결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우리를 돕는 천사들이 작전을 개시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루터'와 같은 역사물을 공연할 때 가장 어려운 점 가운데 하나는 고증된 의상과 소품을 갖추는 일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느 청년의 전화를 받았는데 신사동에서 의상실을 하시는 어머니가 역시 방송을 들으시고 무대 의상을 만들어 줄 마음이 생기셨다는 것이다. 여호와 이레! 그러면서 완전히 공짜로 도와주면 우리가 미안해 할까봐 원단 값의 일부만 받겠다는 얘기에 또 한번 감동했다. 공연 며칠 전 연습장으로 배달된 중세의상은 두건 달린 수도사 복장에서부터 고위성직자들과 귀족들의 화려한 의상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완벽했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가장 어려운 의상문제가 기적같이 해결되자마자 또 하나의 난제였던 중세음악과 음향효과 녹음문제도 기막히게 해결됐다. 극동방송의 음향담당 엔지니어가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전갈을 보내온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근무가 끝나는 저녁시간부터 밤을 새우며 방송국의 음향실에서 녹음을 했다. 좋은 기계로 양질의 녹음을 그것도 공짜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때 무상으로 공여받은 릴 테이프(reel tape)들은 분명히 방송국 재산이었는데 그걸 무단사용한 셈이다. 감사하게도 후에 극동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한 기회에 이실직고를 할 수 있었다.
 
기사의 흉배를 만들기 위해서 적당한 크기의 금속판을 주어다가 망치로 두들겨서 비슷하게 만드는가 하면, 수도원 장면에서 필요한 투박한 나무식탁은 동숭동 언덕받이에 있는 목욕탕의 땔감인 통나무 외피들을 얻어다가 만들었다.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모두 가능해진 그 모든 일사천리의 과정이 하나님의 매직 아니면 무엇인가! 물론 제작비는 아낄 수 있는 대로 아꼈다. 그때 초빙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던진 말이 걸작이었다. "어이 기획, 신경 좀 써봐요. 맨날 짜장면만 먹이니 X이 새까맣잖아요"

   
최종률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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