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수어의 길

11. 수어의 길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3월 26일(월) 15:12

농사회(Deaf Community)의 일원이 된 청인(hearing person)들은 그 안에서 수화를 매개로 한 다양한 소통의 수단과 차원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농사회에서 청인들이 경험하게 되는 의사소통 방식은 대략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 한국수어(KSL:Korean Sign Language)
 
'농식수화', '관용수화'라고 불리어왔던 한국수어(KSL)는 농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합의되는 실제언어이다. 우리가 길거리에서나 지하철에서 매우 역동적이면서 섬세하게 변화하는 얼굴, 그리고 강약과 느낌이 살아 있는 손짓의 수화를 발견한다면 그 수화는 바로 한국수어다. 음성언어인 한국어가 고유의 어휘와 문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시각언어인 한국수어도 자체의 고유한 어휘와 문법을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언어이다. 최근까지 한국수어는 한국어를 손으로 옮겨놓은 소통수단 정도로 취급되어져 왔다. 이러한 불운 속에서 한국수어는 언어로서의 고유성과 개성을 훼손당해왔고 수어 연구에 대한 적한 관점과 체계적인 방법론 또한 세워지지 않아 많은 오용과 남용의 대상이 되어왔다.

# 손짓한국어(수지한국어/Signed Korean)
 
주로 '한글식 수화'라고 불리어왔던 손짓한국어는 한국어의 문법을 기반으로 해서 한국수어의 어휘만을 차용한 소통방식이다. 즉 한국어의 어순에 맞추어 단어 대 단어로 수화 어휘를 대응시킨 것이다. 이것은 어렸을 때 한국수어학습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한국어를 기반으로 해서 자라난 청각장애인이 뒤늦게 수화어휘를 배워 사용하는 경우 많이 보이는 형태이며 농아동과 농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교사의 주도하에 '문장식 수화'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는 수화도 맥락을 같이 한다. 수화통역사도 부득이하게 손짓한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수화통역을 의뢰한 농인이 한국수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손짓한국어를 구사하는 경우, 그리고 음성과 수화를 동시에 구사해야 하는(예컨대, 대질심문) 상황이다.

# 홈사인(Home Sign)
 
성장과정에서 농사회와의 교류나 한국수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농인들, 그리고 한국수화와 한국어 둘 중 어느 언어도 획득하지 못한 저학년 농아동에게서 나타나는 수화형태로서 주로 가족처럼 일차적으로 만나는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사용된다고 하여 '가정수화', '홈사인(Home Sign)'이라 불린다.
 
위의 세 가지 소통 방식 중 청인에게 가장 쉬운 방식은 무엇일까? 바로 손짓한국어이다. 한국어와 한국수어의 중간쯤 되는 이 방식은 한국어 화자인 청인들에게 매우 쉬운 길인 동시에 미로(迷路)이다. 마치 '콩글리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영어학습자들처럼.
 
수어를 배우고 싶은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김유미원장/한국농문화연구원 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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