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우리들의 천국

당신들의 천국, 우리들의 천국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7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2월 20일(월) 17:08

우리 교단에는 지역의 농인들을 위해 농인부서를 만들고 전담 교역자를 세운 교회들이 여러 곳 있다. 지난 주일에 필자는 그런 교회 중 한 곳에 강의를 가게 되었다. 강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 성도들이었지만 농인(Deaf person) 성도들도 상당수 참석해 있었다. 필자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참석한 농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 중 새겨볼만한 질문과 답변이 두 개 있었다.
 
첫째는 "농인인 당신이 꿈꾸는 천국은 어떤 곳인가? 안 들리는 내 귀가 열리는 곳인가?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농인인 곳인가?"였고,둘째는 농인으로 사는 건 불행한 것이라는 관점을 전제로 한 질문이었는데 "그럼 이 세상에서 당신 같은 농인들이 모두 사라지면 좋겠는가?"였다. 첫째 질문에 대해서는 "소리가 듣고 싶다. 그 경험이 궁금하다"와 "천국에서는 모두가 농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상반된 답변이 동시에 나왔다. 반면에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 있던 농인 성도들이 모두 "농인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라고 대답하였다. 흥미로웠던 것은 첫 번 질문에 대한 농인들의 답변이 조심스럽고 느슨했던 것과는 달리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매우 강하고 분명하였으며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강의에 참여했던 농인들 뿐 아니라 농사회(Deaf Community)의 주축들인 30대 이상의 농인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세대이다. 늘 자신의 상태는 청인과 비교할 때 부족하고 결함이 있으며 그래서 안타깝고 고쳐져야 할 상태로 이해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치료와 재활의 대상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살아왔다면 의료기술의 발달을 통해 자신 같이 불행한 농인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한데,정작 '농인들이 없는 세상'은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모순적인 답변을 보면서 '소리가 들리지 않음'이 장애의 차원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존재양식이며 문화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농인들 스스로가 정리된 논리를 가지고 자신들을 '언어적 소수자'로 불러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는 않지만,이미 삶에서 자신들의 상태를 장애(소리가 들리지 않음)가 아닌 문화(세상을 눈으로 삶)로 경험하고 있기에 '모두가 농인인 천국'을 꿈꿀지언정 '농인 없는 세상'은 꿈꾸지는 않는 것이다.
 
이렇게 농인들이 다른 장애영역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청인은 물론 다른 장애인들과도 동질감을 덜 느끼는 이유도 장애의 부분이 달라서가 아니라,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적 토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인들은 비장애인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장애인사회 안에서도 문화적으로 타자(他者)이고 소수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이방인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주류 사회와는 다른 언어와 문화, 공동체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포기함으로써가 아니라 존중받으면서 청인과 함께 자신의 꿈을 키우고 이뤄나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이 꿈꾸는 진짜 천국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사라져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나 함께 존재하고 같은 행복을 누리는 세상! 이 메시지를 위해 그들은 우리 곁에 와있는 게 아닐까?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소리를 빼앗으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명을 맡기신 것이리라. 세상을 눈으로 살며 가슴의 언어인 수화로 세상을 밝히도록….

김유미 / 한국농문화연구원 원장,  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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