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에서 농인(Deaf person)으로

청각장애인에서 농인(Deaf person)으로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 - Deaf Story

김유미원장
2012년 02월 13일(월) 14:33

청각장애 영역에 속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청각장애는 청력활용이 거의 되지 않는 농(deaf),잔존청력이 남아 있는 경우는 난청(hard of hearing)으로 구분되는데 중도실청 및 노인성난청 인구도 이 범주 안에 당연히 포함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청각장애인 하면 떠올리는 수화가 모든 청각장애인의 언어는 아님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새삼 수화를 배우는 분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인성 난청이나 경미한 정도의 난청 등을 제외한 상당수의 청각장애인들은 음성언어가 아닌 수화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농문화(Deaf Culture)를 존중하며,모임(Community)을 통해 지속적인 교류를 하며 소속감을 갖고 사는데 이러한 그룹을 우리는 농인(Deaf persons)이라고 부른다.
 
한글로는 구분이 안되고 영문으로만 구분이 되는 '농인'이란 어휘는 영문소문자 'd'로 표기할 경우 병리적 관점에서의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농(deaf)'을 의미하며,영문대문자 'D'로 표기할 경우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의 '문화적 존재,언어적 소수자로서의 농(Deaf)'을 의미한다. 병리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들을 수 없는 사람들(deaf persons)'이고 청각장애인이지만,언어ㆍ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볼 수 있는 사람들(Seeing persons)'이고 농인(Deaf person)인 것이다.
 
필자는 2년 전에 농인들(Deaf persons)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관련 강의에 강사로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그 곳에서 나이 지긋한 농인 분과 담소를 나누게 되었는데 대화를 나누면서 그 분의 수화가 그 연세에 비해서는 매끄럽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뒤늦게 배운 수화 같지는 않아서 의아해하였다. 그러다가 대화를 통해 그 분이 나이 들어 청력이 약해지면서 과감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농인(Deaf person) 쪽으로 전환하고 농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다. 매우 놀라웠고 또 한편으로는 농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 분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자신의 상태를 '청각장애'로 규정받고 그 틀 안에서 살기를 거절하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그 상태를 새로운 문화에로의 초대,새로운 존재양식에로의 출발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의식전환이 가능한 것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청각장애' 영역이 필연적으로 선호하는 언어가 다른 장애영역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농인들(Deaf persons)만 모인 곳에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오히려,수화를 할 수 없는 이들이 농인들의 모임에 참여했다면,그들이 장애를 경험할 것이다. 농인(Deaf person)! 이들에게 있어 '소리가 들리지 않음'은 장애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양식이며 문화이다. "당신들은 귀로 세상을 사는가? 음성언어로 소통하는가?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산다! 우리는 시각언어로 소통한다!"
 
필자가 운영하는 한국농문화연구원에도 이와 같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자신의 상태를 장애로 규정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존재양식으로 받아들이고자 뒤늦게 수화에 입문하는 젊은 청각장애인(아니 농인Deaf person이라고 불러야 마땅한)들이 매주 찾아온다. 그리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어미새의 심정이 된다. 이 아이들의 날개가 더 이상 다치지 않기를. 결국엔 아름답게 비상(飛上)하기를.

김유미원장/한국농문화연구원 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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