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다른 사람들

언어가 다른 사람들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5>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2월 06일(월) 17:50

필자는 1988년에 수화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농사회(Deaf Community)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이제 그 시간들이 20년이 훌쩍 넘어 버린 세월이 되었는데 돌이켜 보면 과학기술과 사회복지시스템이 상당히 많이 발전하고 변화하였던 시기이다. 1997년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상징되고 이어지는 사회시스템의 변화와 그에 따른 기술적 지원은 장애영역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질과 자아실현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물론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그 변화의 흐름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격세지감이란 말에 공감할 것이다.
 
필자가 처음 농사회(Deaf Community)에 들어왔을 당시 농인들은 서로 만나기 위해 1주일 전,길게는 석 달 전에 청인(듣는 사람)을 통해 전화로 서로 약속을 잡고 약속날짜에 어김없이 그 자리에 나가 서로를 만나는 사람들이었고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 (만약 상대방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면 아주 큰 문제가 생겨서이다.) 이후 1990년대에 가정용 팩스기가 일괄 보급되면서 청인의 개입 없이 팩스기를 통해 서로 만날 약속을 정할 수 있었지만 역시 돌발 상황에서는 연락할 방법이 없어 공중팩스기가 필요하다고 하는 농인들이 많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보급된 무선호출기는 이동 중에 활용이 가능한 최초의 기기였고 휴대폰의 보급으로 문자전달이 실시간 가능해지면서 농인들은 좀 더 편리한 환경에 들어섰으며 2000년대에는 드디어 영상통화가 가능해졌다. 이제 스마트폰을 통한 SNS의 활용 등이 생활화된 오늘날,농인들의 삶은 (이 한 가지 분야만 살펴보아도) 예전보다 청인의 개입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늘어난 편리한 삶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변화와 발전을 농인들과 함께 축하하고 향유하면서도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낭패감을 느끼며 살 수밖에 없었다. 농인들의 삶이 물질적인 면에서는 분명 발전하였는데 농인 개개인의 자아실현과 성취도는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나아진 게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전보다 편리해진 삶을 삶지만 예전보다 사회적 신분이 상승되거나 행복해지진 않았다. 다른 장애 영역이 복지발전의 흐름을 통해 가시적이고 분명한 성취를 이뤄간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결과이다.
 
즉,청각장애인을 소리를 듣지 못해 불편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접근한다면,보청기와 인공와우 수술에 대한 지원,청각정보의 시각화(영상전화기,TV자막수신기,지하철과 공공기관의 자막안내 확대 등) 등을 통해 그들이 소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복지정책은 성공적인 결과를 낳아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실상,청각장애 영역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것만으로는 그들 개개인이 성공하거나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이건 절대로 그들의 노력과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러한 결과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청각장애 영역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청각장애인 아니 농인,그들이 겪는 사회적 장애가 단순히 듣지 못하는 불편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근본적으로 잘할 수 있고 선호하는 언어가 우리와는 다르다는데서 오는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한국어와는 다른 언어인 한국수화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적 소수자'이므로.

김유미원장 / 한국농문화연구원 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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