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습 이대로, Deaf - 그들의 이름 <3>

이 모습 이대로, Deaf - 그들의 이름 <3>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 Deaf Story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1월 30일(월) 13:12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4>

이야기3.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의 세상은 현실과 정반대였으며,꿈속에서의 나는….
 
나는 청인,그러니까 '소리가 들리는 사람'이다. 나를 제외한 내 가족과 마을 사람,아니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귀로 소리를 듣거나 하는 불필요한 기능 따위는 없다. 나 같이 소리를 듣는 사람은 1만 명에 한명 꼴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수화를 사용하고 수화언어능력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학교 입학도 불가능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헌신적인 지원에 힘입어 수화를 어느 정도 구사하지만 대학에 입학하여 학업을 수행할 정도로 발전하지 못한 수화실력 때문에 앞으로의 진로가 불분명하다.
 
공무원,교원,하다못해 운전면허 시험조차 수화실력이 불안하여 응시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님이나 내 동생처럼 완벽하게 수화를 이해하거나 구사할 수 없다. 특히 국가고시에 나오는 수화는 더더욱 까다롭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불편한 것은 불필요하게 무언가가 들린다는 점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소리)들이 나에겐 큰 고통이 되어 다가온다. 가족들과 사회복지사는 이러한 나를 안타까워하며 나를 농사회(Deaf Society)에 적응시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근엔 의료기술의 발달로 청력기관을 안전하고 완벽하게 제거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이 수술을 받은 청인들이 농사회(Deaf Society)에 성공적으로 진입한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나도 이 수술을 받고 좀 더 수화에 집중하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수술이 두렵기도 하고 '내 모습 이대로 살아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는 없는 걸까'하는 생각에 절망감을 느낀다. 그나마 내 인생에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은 나와 같이 소리가 들리는 청인들이다. 나와 같은 청인들의 모임인 '청인연대'에 참여하면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이 된 기분을 느낀다. 주류사회의 일원인 농인들은 우리를 장애인으로 보지만 우리 청인들끼리 모여 있을 때는 아무런 장애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청인들 중에도 '청력제거수술'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이 늘었고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언젠가 우리 같은 청인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같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 적다는 이유로 우리는 고쳐져야 하는 '수리 대상'이 된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를 위해 헌신해 오신 청인교회 목사님은 늘 말씀하셨다.(그 분은 농인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신다"고. 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위의 이야기를 읽는 당신이 불편함과 당혹감은 느꼈다면 당신은 다수자(多數者)인 청인(hearing person)이다. 위의 이야기가 꿈이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그러나 위의 이야기가 현실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소수자(小數者)인 농인(Deaf person)들이다. 다수자(多數者)인 우리 청인들은 그들을 우리의 관점에서 '청각장애인'이라고 부르고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호의를 베푼다. 그리고 그러한 지원 중엔 그들에겐 위협이 되거나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존재한다. 그러나 구태여 장애학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장애는 더 이상 상대적으로 열등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개성과 문화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낯설고 새롭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정작 주님은 이천년전에 이미 이런 관점으로 그들을 대하셨다. 우주의 티끌 같은 우리들은 서로간의 차이를 논하며 꼬리표를 붙이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 무엇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그분에게 '이 모습 이대로' 사랑받는다. 청인이든,농인이든.

김유미 / 한국농문화연구원 원장ㆍ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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