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f - 그들의 이름 <2>

Deaf - 그들의 이름 <2>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 Deaf Story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1월 13일(금) 15:56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3>

"귀가 들리지 않는다.","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그들에 대한 이해와 접근방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가장 보편적인 관점,그러니까 지구상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리를 듣는 사람(청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상태이며,정상의 범위를 벗어난,무언가 결함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흔히 '병리적 관점'이라고 일컬어진다.
 
불과 수십 년 전 만해도 이러한 상태의 사람들을 '불구자','병신','벙어리','귀머거리' 등으로 불렀고, 지금에 와서는 '청각장애인(person with hearing impairment)'라는 표현으로 발전하였다. 과거 '병신', '벙어리' 등의 용어에 비한다면 지금의 호칭은 상대적으로 인격적이고 인권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병리적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수(多數)를 기준으로 소수자(小數者)들을 판단하고 다수자들의 기준에 맞는 통합(統合)을 지원한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나는 1백%을 듣는데 너는 40%만 듣는다. 네가 1백% 듣는 나와 같이 되도록 지원하겠다."
 
"나는 1백%을 듣는데 너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나와 비슷하게라도 되도록 지원하겠다." '왜? 듣는 것은 당연한 거니까… 행복한 거니까…사실,우리가 다수니까…'
 
그렇게 해서 병리적 관점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잔존청력)'에 따라 아래와 같이 구분한다.
 
첫째,농인(person with deafness) - 90dB(교육계에서는 70dB)이상의 소리도 듣거나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
 
둘째,난청인(person with hard of hearing) - 90dB(교육계에서는 70dB)이하의 소리를 듣거나 구별하는 사람들.
 
이렇게 구분된 사람들에게는 보청기와 언어치료와 인공와우수술이 안내되고 지원되며 심지어 사회적으로 강요되기도 한다. 물론 이 병리적 관점에 의한 사회지원시스템이 갖는 기능과 장점도 당연 존재한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농인을 섬기고자 하는 기독인들이라면 성찰하고 들여다봐야 할 점이 있는데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수자(多數者)의 시선이며,'청각장애인'은 당사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타의에 의한 호칭이라는 점이다. 진실은 이렇다! 우리 중에 누군가는 운 좋게도(?) 다수자에 속한 것뿐이며 누군가는 그분의 섭리(!)에 의해 소수자(小數者)에 속한 것뿐이다.
 
우리는 돌고래들이 듣는 초음파를 듣지 못한다고 상실감을 느끼지 않는다. 초음파를 들은 경험이 없어서 삶에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장애'라는 것,다수가 경험하는 것을 경험하지 않는 것,상실감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다수자들의 시선과 해석에서 오는 것이다. 청각장애인,그것은 당사자가 아닌 타자,세상이 그들을 보는 시선이다.

김유미원장(한국농문화연구원,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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