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걷는 역설의 길

잠시 걷는 역설의 길

[ 생명의양식(설교) ] 생명의양식

김만배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1월 13일(금) 15:53

본문말씀 : 마 20:26~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역사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역사를 주장해 가십니다. 애굽에서 압제와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히브리 백성들을 구출해 내기 위해서,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일을 계획해 가십니다.
 
애굽왕 바로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바로보다 더 힘 있고 능력 있는 왕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히브리 노예의 아들,모세를 바로왕의 궁궐로 들여보내십니다. 그것도 바로의 아들로, 왕자가 되어,세계 최고의 왕립 교육을 연마케 하십니다. 바로의 편에서 보면 자신과 싸울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격이 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블레셋의 명장중의 명장 골리앗 백전백승의 노련한 장군과 싸워야 할 이스라엘의 대표자는 누구였습니까? 그것은 결코 견줄 상대가 되지 않는 소년이었고 장군이 아닌 목동이었으며,거대한 칼을 쓰는 자가 아닌 물맷돌 한 알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로마의 식민 철권통치하에 신음하며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헤롯대왕이나 가이사황제보다 더 힘 있고 능력 있는 철권 통치자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지닌 연약한 아기였고,가장 작고 초라한 동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메시야가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자라난 곳도 나사렛으로써 이방인들과 소작농들이 가난하게 목숨을 연명해 가는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암하렛츠 즉 땅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자라나십니다.
 
또한 바벨론 포로하에 선택받은 백성들이 신음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을 때 세계 초일류 강대국 바벨론을 물리치기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은 고레스였고 작은 나라 페르시아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는 제2의 출애굽은 이방인인 고레스에 의해서 결국 바벨론을 무너뜨리게 합니다. 또한 고레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주셔서,포로들을 본국으로 보내는 해방정책을 쓰게 하셨습니다.
 
조국으로 돌아갈 때는 모아놓은 재물도 가지고 가도록 하였으니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이한 방법입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며,그 역사의 중심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정치적 메시야가 되어 예루살렘에 가서,왕이 되실 것을 기대한 철없는 제자들의 무지가 주님의 마음을 더욱 외롭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창조의 주님,역사의 주관자이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라면,세상적인 가치관과는 반대가 되는 역설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크고자 한다면 먼저 섬기는 자로 겸손과 희생의 삶을 살아가라고 부탁하십니다. 온통 자신이 아니면 안될 것같은 소리들이 이 땅에 팽배합니다. 언제나 사랑을 섬기고 희생하는 순박한 바보의 몫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로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종이 되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간과 물질과 노력도 나를 뛰어넘어 주인님께 순종하는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자발적으로,자처해서 고난의 자리에 들어가고 억울함을 항변하지 말라고 부탁하십니다.
 
셋째로 얻기를 원한다면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속물로 자신의 생명을 드릴 때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 2:9)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을 전제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면 성공을 전제로 잠시 실패의 길을 걷는 것이라면 영원한 사랑을 전제로 잠시 오해와 반목과 질시의 길을 가야 한다면,묵묵히 기도하며 그길을 가야 하나님의 사람이 아닐까요?

김만배목사/주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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