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 첫 공연의 기억

'빈 방' 첫 공연의 기억

[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

최종률장로
2012년 01월 06일(금) 10:26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 교회 어린이부. 성탄 극을 준비하던 지도교사는 늘 생활에서 소외되던 지진아 윌레스에게 여관주인 역을 맡긴다. 공연 날 그 아이는 빈 방을 애타게 찾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대본대로 "방이 없으니 마구간이라도 쓰려면 쓰시오"라고 해야 하지만 머뭇거리면서 "우리 집에 방이 있으니 써도 좋아요"라고 말해서 연극을 망치고 만다. 그러나 관객들은 집으로 돌아가서야 뒤늦은 감동을 느끼게 됐다.
 
한 일간지에 실린 짧은 해외토픽 기사가 불러일으킨 감동의 전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필자는 똑같은 감동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된다. 당시 고등부 총무교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성탄예배 때 고등부 지도목사님께서 바로 그 지진아의 실화를 예화로 설교하시는 게 아닌가. 대개는 한 번 들은 얘기를 다시 들을 경우 감흥이 반감되기 마련인데 그 이야기는 달랐다. 감동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증폭되며 가슴에 밀려오는 것이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도록 머리 속엔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리고는 이 감동적인 실화를 극화해야겠다는 강렬한 의욕이 솟구치면서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대본을 완성해서 속성 연습으로 막을 올리고도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렇게 그 해를 보내고 1981년을 맞았다. 그런데 또 하나의 새로운 전기가 우연찮게 마련됐다.
 
하루는 내가 미술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서울 계성여고로 극작가를 지망하는 20대 여성이 찾아왔다.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나는 대뜸 미국 지진아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도 들으면서 감동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넓은 미술실을 무대 삼아 이리저리 움직이며 즉흥대사와 즉흥연기를 하기 시작했고,그녀에겐 속기를 요청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참 재미있는 풍경이었고 극작가 지망생을 만난 것도 절묘한 타이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식으로 그날 엉성한 속기 대본이 만들어졌고 난 그녀에게 그것을 기초로 해서 희곡을 완성해 줄 것을 부탁했다.
 
얼마 후 대본을 받아 봤는데 어법이나 세부묘사에 있어서 내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곧바로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빈 방 있습니까'의 45분짜리 초고가 완성됐다. 제목은 이미 정해놓은 터였고 주인공의 이름을 짓는 과제가 남았는데 '온복이'와 '덕구'로 압축한 끝에 투박하면서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덕구로 낙점했다. 초겨울이 되자 배우들을 모으고 연습에 돌입했다.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셔서 연습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빈 방'만으로는 러닝타임이 너무 짧아서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번역극을 한 데 묶어 "81년 성탄절을 위한 두 개의 단막 무대"라는 표제를 붙이기로 했다.
 
신생극단으로서 재정 사정이 어려워 신촌 이대입구에 있는 손바닥만 한 소극장을 빌려 그해 성탄 즈음 공연에 들어갔다. 공연 첫날부터 예상외로 많은 관객이 몰려와서 가뜩이나 작은 극장에 다 수용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빈 방 있습니까'의 30년이 넘는 역사를 여는 첫 번째 막은 그렇게 두근거림과 수줍음을 동반한 채 조용히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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