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 생명의양식(설교) ] 생명의 양식

손달익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1월 02일(월) 15:50

▶본문말씀 :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창 33:1~12)

우리 모두가 또 다시 새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2011년은 정말 다사다난했던 격동의 한 해였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반월가시위'가 전 세계를 휩쓸었으며,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전개된 재스민 혁명은 수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서야 역사의 격변기를 만들었습니다.
 
국내외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부시책을 두고 끝없는 찬반 논쟁이 이어졌고, 사회적 양극화는 우리사회를 심각한 갈등구조로 몰고 갔습니다. 남북관계는 여전히 냉랭함 속에 이어지고 있으며, 어느 곳에서도 평화가 없고 따뜻함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한기총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고 창피하게 만들었습니다. 노회들이 평화롭지 못하여 총회에 갖가지 송사를 제기하는 어려움도 생겼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요소들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우리 개인의 삶도 교회도 사회도 모두 더 고통스럽고 절망감이 깃들게 될 것 같아 마냥 즐겁고 희망차게 신년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이 갈등과 괴로운 마음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본문의 주인공 야곱입니다. 그는 지난 20여년을 이 무거운 가슴을 안고 살았습니다. 일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형 에서와의 이 갈등이 생각났고 잘 되고 형통할 때에도 이 일만 생각하면 우울하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너무나 뜻밖에도 20년간 서로 괴로워하며 마음의 칼을 갈고 살았던 두 형제는 서로 포옹하고 입 맞추고 화해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에서는 야곱에게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고 말하게 됩니다. 야곱은 어떻게 이 평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이 아침 이 평화를 만들어낸 그의 지혜에서 빛을 찾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화평하라.
 
그는 32장에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긴 밤을 보냈습니다. 형 에서가 무장한 군인 4백여명을 대동하고 야곱이 강을 건너기를 기다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얍복강 강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는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당신이 나를 축복하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풀고 싶어 하는 그의 간절함을 보게 됩니다. 왜 그는 칼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은 에서인데 하나님과 대면하는 긴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까? 그는 모든 관계의 파괴가 하나님과의 관계파괴에서 비롯됨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첫 인간 아담과 첫 이웃 하와의 관계는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가 되는 친밀함과 일체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도 선악과 사건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균열이 오자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했던 어떤 역사도 평화를 만들 수 없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배우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 갈등과 괴로움이 하나님을 등진 자기 삶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밤 새워 노력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회복이 없는 협상 타협 조정은 더 큰 문제를 만들고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는' 결과를 만들 뿐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진정성을 회복하라
 
32장 내용에 따르면 그는 혼자 살 궁리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면한 '브니엘의 체험' 후 그는 진정으로 에서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3절에 따르면 그는 무리의 선두에 섰습니다. 일곱 번 절을 합니다. 모든 가족들에게 에서에게 절하게 합니다. 그리고 강권하여 그가 내 놓은 예물을 받게 만듭니다. 진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진정성이 사라졌습니다. 화려한 이벤트도 있고 미사여구도 풍성하고 협상의 기술도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진정성이 없습니다. 일회성의 면피용 술수들이 난무하고 가장된 미소로 상대를 기만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누구나 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동 받고 마음을 같이하고 생명을 나누는 동역자를 만나는 일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듯 자기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진정성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이익을 나누는 목적으로 모인 세속적 집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겨 하나님의 평화, 하나님의 정의가 구현되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려 모인 예수 공동체입니다. 여기에 진정성이 결핍되면 우리는 모든 존재 근거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웃 사랑의 진정성을 우리 사회에 보여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관계회복을 열망하는 진정성이 나타날 때 평화는 가능하고 남은 길의 동행도 가능할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진정성에 감동되자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우리가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되어야 우리가 가는 이 새로운 한 해에 하나님께서도 즐거이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고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손달익목사 / 서문교회ㆍ총회 부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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