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창립 1백주년 맞아 사회봉사에 대한 평가

총회 창립 1백주년 맞아 사회봉사에 대한 평가

[ 총회1백주년 ] 한국교회 역사는 교회의 사회봉사의 역사

최무열총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1월 02일(월) 14:28
 초기 직접봉사,후기 사회복지 운동 차원으로 발전
 6ㆍ25동란 복지의 꽃,교파분열로 사회적 기능 축소


한국교회의 사회봉사는 선교사들의 선교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역사는 교회의 사회봉사의 역사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한국초기 선교는 초기 선교사 시대와 후기 선교사 시대로 나눌 수 있는데 초기 선교사 시대의 사회봉사는 주로 직접적인 봉사에 관련된 것이었다. 예를 들면 교육을 통한 봉사, 여성의 권리신장을 통한 봉사, 장애인 보호를 위한 봉사, 그리고 각종 의료활동을 통한 봉사가 그것이다.
 
후기 선교사 시대의 봉사는 초기 선교사 시대의 직접적인 개인의 원조나 도움의 차원을 떠나 하나의 운동차원으로 승화하는, 소위 사회개혁적인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농총계몽운동, 문맹퇴치운동, 공창폐지운동, 국채보상운동, 절제운동 등이 그 대표적인 운동으로 거론될 수 있다. 이처럼 한국교회 초기의 사회봉사는 철저히 시대적 상황에 부합한 발 빠른 대처와 전 사회를 계도, 계몽하는 거국적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굳이 교회의 사회봉사라고 하기 보다는 국가적 차원의 복지선교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사회봉사는 6.25 동란을 통하여 꽃을 피웠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수 백개의 외원기관의 봉사활동은 주로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이러한 활발한 교회의 사회봉사는 전쟁으로 인하여 아사 할 수밖에 없는 한국 민족을 살려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당시 외원기관의 집행 예산이 국가 부처인 보건사회부 보다 높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교회의 사회봉사가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원기관을 통한 한국교회의 사회봉사는 이 땅에 현대적 개념의 사회사업(사회복지)을 심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고 교회의 사회봉사야 말로 사회복지의 척도로 작용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1950년대와 60년대의 심각한 교파분열로 인하여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소중한 유산이자 성장의 동력이었던 사회봉사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을 잃게 된다. 심각한 교파분열은 자연스럽게 교파확장과 교회성장에만 열을 올리게 되었고 이로 인한 교회의 대사회적 기능은 현저하게 축소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정적 현상은 1970~80년대 이르러 신학적 양극화 현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진보주의를 표방한 교단은 심각한 사회혁명적인 방법으로 사회봉사를 실시하려고 함으로서 보수주의의 강력한 견제의 대상이 되었고, 반대로 보수주의를 견지한 교단은 사회봉사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꺼버림으로서 사회로부터의 존경은커녕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만다. 물론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단순히 한국교회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상적 갈등, 즉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바탕을 두었던 WCC와 WEA의 갈등으로 인한 양극화 현상은 여과 없이 한국교회에 투입되어 각각 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이와 더불어 1970~80년대 한국교회를 강타한 교회성장 이론 또한 한국교회의 보수화에 크게 영향을 미침으로서 사회봉사적 견지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키게 되었다.
 
다행히 1974년 로잔세계복음화대회에서의 존 스토트 목사와 급진적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전도와 사회봉사를 동반자의식(partnership)으로 개념화함으로서 양극화로 치닫던 세계교회는 어느 정도 신학적 평정을 되찾게 되고 이러한 영향으로 인하여 1990년대부터 한국교회의 사회봉사 역시 평정을 유지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까지 사회봉사적 측면에서 적극성을 보이지 않던 보수교회들은 이 운동을 통하여 드디어 교회의 사회봉사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되었고 또한 진보교회들 역시 사회구원만으로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을 새롭게 인식하고 교회성장의 중요성을 파악하게 된다.
 
2000년대 들어 교회는 사회봉사의 중요성에 대하여 재인식할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적 기술을 과감히 도입함으로서 전문적 사회봉사 체계로 나아가게 된다. 물론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교회나, 보수주의를 견지하는 교회 모두 교회의 사회봉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문화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문제는 아직도 교회의 사회봉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오직 복음'을 외치는 교회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함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새해를 맞으면서 한국교회는 존 스토트가 주장한 것처럼 '신학과 사회봉사는 하나', 또는 '신학과 사회복지는 파트너'라는 종합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사회를 치료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될 때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부흥의 자리로 나아가게 됨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최무열총장(부산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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