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

큰 바위 얼굴

[ 목양칼럼 ]

강무순목사
2011년 12월 19일(월) 13:06

나에게는 생각만 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때로는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연인을 그리워하듯이 그리움에 사무칠 때가 있다. 그는 나의 큰 바위 얼굴이다. 그가 나의 바라봄이 된다는 사실이 목회에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가정의 우환으로 인해 나는 대학시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다. 자존심 때문에 친구들에게 조차 내색하지 못하고 살았다. 기숙사에서 청소년 사역에 열정을 가진 한 친구와 같은 방을 쓰며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 친구와 고향 교회 중고등부 여름수련회를 계획했는데 그 수련회를 코앞에 두고 그는 섬기는 교회 청년수련회에 갔다가 익사사고로 우리 품을 떠나고 말았다. 이 일로 그와 한 교회를 섬기고 있었던 같은 방 선배와 친구의 못다한 삶까지 더 열심히 살자며 많은 시간과 생각을 같이 하면서 깊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선배 형님은 졸업 후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하루는 힘든 이민생활을 하며 공부하던 형님이 1백불과 함께 나에게 격려 편지를 보내왔다. 당시 1백불은 형님에게나 나에게나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이 일이 나에게 나눔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 주는 계기가 되어 그 때부터 나도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사례비의 일부를 떼어 나눔의 삶을 살며 나눔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후로 소식이 끊겨 서로 연락을 못하다가 오랜 세월이 흘러 수소문 끝에 중국에 유학생 신분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이 후 좋은 논문을 쓰게 되어 중국 최고의 대학인 그 곳의 교수로 남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인을 통해 연락처를 알게 되어 여러 경로를 통해 형님과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였다. 그 때 지난 일을 생각하며 준비한 1백불을 형님 아들에게 건네주며 그 '1백불의 기적'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형님은 그 일에 대한 기억조차 없음을 보면서 참된 나눔의 정신을 배우며 또 한 번 감동하게 되었다.
 
그 후 교수직에 계속 머물며 안정된 삶을 살면서 더 크게,더 넓게 사역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한국사람 하나 없는 농촌에 내려가 중국 땅에 버려진 아이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꿈을 심고 있다. 그들은 다 방광이나 항문이 없다든가,생식기가 비정상이라든가,콩팥이 셋이라든가,심지어 코가 없이 태어나는 등 수술비를 전혀 감당할 수 없는 부모들에 의해 내버려진,실로 재앙 속에 태어난 고아들이다. 형님 내외가 낮은 자리에서 낮은 자와 함께하며 '예수 가족'의 꿈을 심는 모습에서 사역자가 서 있어야 할 자리와 자세를 배우게 된다.
 
그곳을 방문해 함께 지내는 동안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자로 살면서 생각과 행동과 차림새까지 바뀌어진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섬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두 분은 자신들의 육체와 시간의 한계를 바라보면서 장애 아이들이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로 서로를 섬겨 장애를 극복하도록 돕고 있었다. 그들의 행복한 웃음 속에서 모든 방문자들은 작은 천국을 보는 진한 감동과 교훈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살지 못해 먼저 간 후배에게 부끄럽다는 형님에게서 하늘 보좌 버리고 낮고 천한 마굿간에 육신을 입고 오신 주님의 모습을 본다.

강무순목사/성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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