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민주화 진원지,튀니지

중동 민주화 진원지,튀니지

[ 이강근의 중동이야기 ] 21세기 중동을 바꾸어 놓은 자스민혁명의 진원지 튀니지는 성어거스틴의 땅, 튀니지발 자스민혁명이 중동을 열고 있다

이강근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1월 07일(월) 16:26

올초 중동의 민주화 시위라는 초대형 태풍이 발생한 진원지는 북아프리카의 튀니지다. 26세의 한 청년이 노점상 단속에 생존권을 위협받자 분신으로 항거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튀니지발 중동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반정부시위는 점차 알제리 이집트 리비아 모로코 예멘 시리아 등 중동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제까지 3명의 독재자가 시민의 힘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왔고 현재 여러 나라에서 반정부시위가 진행중이다. 신의 선물이라고 불리는 튀니지 국화(國花)인 자스민의 이름을 따서 자스민혁명이라 부른다.

한때 코끼리를 타고 로마로 진격한 한니발 장군의 기계와 아프리카의 곡식창고라 불릴만큼 비옥한 땅을 가지고도 높은 실업율과 부패정권으로 인해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노점상이라도 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부패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가진 것이라고는 노점상 수레 하나라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휘발유로 자신의 몸을 불태울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튀니지의 벤알리 전 대통령은 1987년 31년간 권좌를 유지하던 부르기바 대통령을 무혈 쿠테타로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대통령 종신제 폐지와 정당 민주주의를 제창했다. 또한 시민정치보장, 정치범석방, 안보사건재판소폐지, 당시 검찰총장 직위해제 등 사법개혁을 단행하며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1988년에는 아랍국 최초로 고문금지조약에 비준하고 다원주의를 존중하며 법치국가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벤알리는 중동 민주주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고, 1988년 올해의 인물, 민주주의 국제인권상을 수상했다. 이후 23년 간 재임했고, 2009년 대선에서도 89%의 높은 지지율로 5선 연임에 성공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중동민주화의 축출 대상 1호의 독재자란 또 다른 이름을 가졌을까?

'스스로 임명한 대통령'이란 별칭을 가진 벤알리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 백명의 정치범을 투옥하고 고문을 자행했다. 장기집권과 인권탄압 그리고 부정부패로 세계인권단체는 '지구상에서 가장 부패한 독재자'로 묘사했다. 그럼에도 미국 등 서방세계와의 친분을 유지한 덕에 독재자나 인권탄압이라는 외부압력을 비껴갈 수 있었다.

튀니지는 한 때 코끼리를 타고 로마로 진격했던 한니발 장군의 땅이요, 초대교회 당시 터툴리안, 키프리안 그리고 성어거스틴을 탄생시킨 아프리카 최초의 기독교 국가였다. 특히 삼위일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터툴리안은 "나는 부조리한 고로 믿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성어거스틴은 이탈리아로 떠날 때 가뜩이나 타락한 아들이 더 타락할지도 몰라 눈물로 기도한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었는지 후에 위대한 영적 거성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는 국민의 98%가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로마시대 때 아프리카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기독교 전성기를 누렸던 튀니지에 후에 아프리카 최초의 이슬람사원이 지어진 땅이 되었다.

튀니지가 중동 민주화 운동의 진원지가 된 것은 뭔가 의미 있어 보인다. 비록 독재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이지만 북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 교육열이 제일 높고, 아프리카를 겨냥한 IT 산업의 전초기지로 삼을만한 개방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튀니지가 민주화가 되면 될수록 다시금 옛 성 어거스틴의 땅에 기독교의 부흥이 재현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희망을 가져 볼 수 있을까 한다.

이강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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