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 교계 ] 서민정책은 없고 이익 추구만 남은 금융권력을 향한 반대 목소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1년 11월 04일(금) 16:01
지난 9월 17일 세계 금융의 심장부 미국 뉴욕의 월가(街) 인근에서 수백 명이 모여 반월가 시위가 열렸다.

이들이 외친 구호는 다음과 같았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서민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 배만 불리는 금융기업들의 모습에 분노한 시민들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에서 금융업계의 과욕에 대해 반대의 기치를 들어올린 것이다.

지금의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지난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의 금융업계는 이윤추구를 위해 자격이 없는 가난한 서민들에게까지 무리한 대출을 권장해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돈 없고 힘 없는 서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가의 금융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제난 속에서 정부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수천억원의 인센티브 축제를 벌이고 사회에 대한 기부나 고용, 환원 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금융업계는 서민들에게 예금이자는 적게, 대출 이자는 높이 받으면서 서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된 반월가 시위는 월가 금융사 임직원들에 대한 응징을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후 반월가시위는 반전운동, 긴축재정 반대와 복지축소 반대 등을 주장하는 다양한 계층들도 가세해 그 영향력을 더욱 키워갔다.

이러한 반월가시위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에는 전세계 80여 개국 1천5백여 도시에서 일제히 반(反)월가 시위가 벌어졌다. 비록 특별한 주도세력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된 이 운동은 각 나라에서 서민을 위한 정책은 없고, 이익 추구의 차가움만 남은 금융권력을 향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반월가시위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전세계에 확산된 이유는 SNS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경제적 영역에서 소외된 대다수 서민들의 공감대가 함께 분출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반월가시위대들의 "우리는 미국 최고 부자 1%에 저항하는 99% 미국인의 입장을 대변한다", "미국의 상위 1%가 미국 전체 부의 50%를 장악하고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방값 걱정, 끼니 걱정을 하지 않게 해 달라" 등의 구호는 이러한 서민들의 공감대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들은 최상위 소득계층 1%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같은 처지에 있다는 구호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며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실업, 빈부격차 등 경제 문제는 물론 의료보험, 환경, 전쟁, 교육, 마약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월가시위의 가장 큰 원인은 빈부격차에 따른 양극화라고 지적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라구람 라잔 교수(시카고대)는 "소득이 하락한 사람들은 희망을 잃게 되고 그만큼 더욱더 소득 재분배에 관심을 갖게 된다"며 이번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반월가시위가 미국에서 발생하게 된 것도 극심한 소득불평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의 말처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소득 불평등도는 회원국 30개국 가운데 멕시코와 터키를 제외하면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 국세청 조사 결과 미국 상위 소득계층 1%는 1993년부터 2008년 사이 미국에서 생성된 소득의 52%를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2만5천달러 미만 소득을 얻은 미국 가구 수는 3천50만가구에 달해 20만달러 이상 버는 가구 수의 7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소득 불평등이 더욱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반월가시위는 한국에서도 있었다. 반월가시위가 각 나라의 상황마다 그 성격이 약간씩 달랐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시위도 미국의 그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미국의 시위가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고도 수천억원의 인센티브 축제를 벌이고 있는 월가 금융사 임직원들에 대한 응징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한국판 월가시위는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에 갖췄던 금융 공공성 회복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부산저축은행이 9조원에 가까운 돈을 불법으로 유용한 것을 비롯, 저축은행들의 비리가 드러나고 세계적인 투기자본 론스타의 불법적 기업인수를 통한 막대한 실리 취득을 금융당국이 저지하지 못한 사건 등 금융권이 공공성을 지키지 못했다며, 금융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주장이 이번 한국 시위의 주된 구호였다.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30여 명의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과 외국인 유학생 등 6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투기자본 반대, 론스타 처벌 등 글로벌 투기자본의 폐해를 지적하고 금융공공성 회복에 금융감독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같은 날 저녁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투기자본 문제, 반 자본주의, 한미 FTA 반대 등 갖가지 주제와 입장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왔으나 그 규모나 운동의 통일성 측면에서 아직 많이 미흡해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이러한 반월가시위의 분위기는 최근 차츰차츰 사그라들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반월가시위가 비록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큰 흐름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전세계의 시민들이 금융자본으로 대표되는 1% 부자 혹은 권력자들의 탐욕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만들어가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는 점에서 전세계에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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