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영적 대각성의 부흥운동,한국교회 성장의 원동력

1907년 영적 대각성의 부흥운동,한국교회 성장의 원동력

[ 총회1백주년 ]

김성진 기자 ksj@pckworld.com
2011년 10월 24일(월) 14:17
불모지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이 땅에는 1907년 민족적인 시련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영적 대각성의 부흥운동이 시작돼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특히 1907년 평양에서 시작된 대부흥운동과 백만인구령운동은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설립된 1912년까지 지속적인 교회 성장을 이뤄왔다.
 
평양 대부흥운동이 시작될 1907년 당시의 교세를 살펴보면, 길선주 이기풍 한석진 방기창 서경조 송인서 양전백 등 최초의 7인 목사를 비롯한 49명의 장로와 5만6천9백43명의 교인수,6백91개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평양에서 시작된 대부흥운동은 교세 성장의 원동력이 돼 3년만에 목사수는 6배 늘어났고 교인수도 2배로 성장했으며 교회수도 2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수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여줬다.
 
이러한 교회의 성장은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설립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총회가 설립될 당시의 교세를 보면,목사 65명과 장로 2백25명,세례교인수 5만3천8명,교인수 14만4천2백60명,교회수는 1천4백38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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