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고 행할 본분의 확실한 법"

"신구약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고 행할 본분의 확실한 법"

[ 총회1백주년 ] 온건하고 일반적인 하나님의 예정 표현, 웨일즈 칼빈주의 감리교회 기념설 보여

백용기 교수
2011년 10월 21일(금) 11:24

   
한국교회가 낳은 최초의 일곱목사(뒷줄 좌로부터: 방기창,서경조,한석진,이기풍,길선주,송린서,1907).

1907년 9월 17일 평양의 장대현교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노회'가 조직되었다. 이 최초의 노회에서 7명의 한국인 목사를 장립하였다. 이 노회에서는 1904년 인도장로교회의 '12신조'를 대한장로교회신경(Confession of faith)으로 채택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신경은 먼저 서문으로부터 시작한다. "대한장로교에서 이 아래에 기록한 몇 가지 조목으로 신경을 삼아 목사와 인허 강도인과 장로와 집사로 하여금 청종케 하는 것이 대한교회로 설립한 본(母) 교회의 가르친 바 취지와 표준을 버림이 아니요 오히려 찬성함이나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신경과 성경요리문답 대소책자로 성경을 밝히 해석한 책인즉 우리 교회와 신학교에서 마땅히 가르칠 것으로 알며 그 중에 성경요리문답을 적은 책을 더욱 교회문답으로 삼느니라."

그런 후 12조항의 신경이 언급되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제1조 성경, 제2조 하나님, 제3조 삼위일체, 제4조 만물 창조, 제5조 인간 창조, 제6조 인간 타락, 제7조 그리스도의 대속, 제8조 성령, 제9조 은혜, 제10조 성례, 제11조 교인생활, 제12조 부활과 심판 등이다. 드디어 1912년 9월 1일 평양여자성경학원에서 2백21명의 총대가 참석하여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결성되었다. 총회의 중요한 임원은 선교사들에 점유되어 총회가 한국교회의 독자적인 운영을 하기에는 아직 미흡하였다.
 
한국장로교 창립총회에서 채택된 신경은 인도장로교회 '12신조'와 몇 가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신경의 서언에 '집사'가 첨가되었으며, 인도신경에 있는 '웨일즈 칼빈주의 신앙고백서, 도르트 신조 및 표준서'가 삭제되었다. 대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이 들어가 있다. 마지막으로 "성경요리문답을 적은 책을 더욱 교회문답으로 삼는다"는 구절이 삽입되었다.
 
여기서 '모교회의 취지와 표준'이라는 것은 세계 개혁교회가 고백하는 보편적인 신앙고백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인도장로교회에서 언급된 신경들을 삭제한 것은 장로교회의 다양성을 축소한 것이며,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삽입하는 것은 신경의 폐쇄성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웨일즈 칼빈주의 신앙고백을 삭제한 것은 한국장로교 신경과 인도장로교회 '12신조'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먼저 인도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of India: PCI) 신조에 나타난 웨일즈장로교회의 신학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교회는 1841년에 설립되었는데, 일찍이 웨일즈 칼빈주의 감리교회라고 알려진 웨일즈 장로교의 선교노력의 열매이다. 여기에는 휫트필드(George Whitefield)의 영향력이 지대하였다. 이들은 1823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토대를 둔 44개조의 신앙고백을 출판하였다.
 
이들의 선교는 런던선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며(1798-1840), 인도장로교회는 그들의 선교 결과였다. 이 교파에는 장로교회와 회중교회가 혼합되어 있으며, 1864년에 총회가 결성되었다. 이들의 교리는 칼빈주의적이지만 설교는 엄격한 것과는 멀고, 온건하고 복음적이며 관대하고 세련되어 있었다. 1735년 이후 1762,1780,1791 그리고 1817,1832,1859,1904-1905에 일어난 모든 웨일즈부흥운동은 칼빈주의 감리교회에서 일어난 것으로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한국장로교 신경의 신학적 특징을 보면 제1조의 "신구약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고 행할 본분의 확실한 법"이라 언급하다. 이것은 선교 본국의 성경영감설 논쟁을 감안할 때 매우 부드러운 표현이다. 다시 말하여 성서무오설이나 영감설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다.
 
제9조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사...저희를 미리 작정하사...". 여기에는 엄격한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중 예정은 볼 수가 없고 매우 온건하고 일반적인 하나님의 예정을 표현하고 있다.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구절은 제한적 구속을 주장하는 엄격한 칼빈주의와는 지극히 다르다. 또한 "주의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야"라는 구절은 칼빈의 영적 임재설이 아니라 웨일즈 칼빈주의 감리교회의 기념설을 보여주고 있다.
 
본 신경에 나타난 신학을 전체적으로 평가해 보면 1) 가장 중요한 '우리의 신앙고백'이 없다.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책으로 언급하며,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의 표준으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3) 그러나 인도장로교회 신조에는 없는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서언에 첨가하여 교리의 엄격성을 드러낸다. 4) 웨일즈 칼빈주의 신앙고백 등을 삭제함으로써 교리의 폐쇄성을 나타낸다. 5) 하지만 각 신경의 내용은 엄격한 칼빈주의 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는 보다 개방적이다. 6) 이것은 엄격한 칼빈주의 보다 웨일즈 칼빈주의 감리교의 성격을 포함한다. 7)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에 교회론이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연구과제이다.
 
본 장로교회 창립과 12신조 채택에 함축된 신학적 배경에는, 선교사들의 교육정책에 나타난다. 그들은 한국인 교역자들의 교육 정도는 한국 교인의 지적 수준에 상응하게 할 것이지,지나치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거나 서로 어울리지 아니할 정도로 높은 교육은 시키지 말 것 등이다. 이것은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이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의 부흥운동에 영향을 받아 파송된 상황과 연관된다. 웨일즈, 인도 등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은 한국에 신학적 교리적 관심보다는 부흥회적 열정을 자극시켰으며, 이 흐름은 1903년부터 시작되어 1907년 평양부흥회, 1911년 1백만명 구령운동으로 확산된다. 이러한 부흥회적 관심은 교리나 신학적 작업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하지만 이 신경은 당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미 감리교와 장로교는 1905년 하나의 교회를 구성하고자 장ㆍ감 연합공의회를 조직하였는데, 이 신경은 상당히 유연성을 발휘하여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에 무리 없이 다가갈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 시기 세계기독교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1908년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나중에 '교회 사회신조'로 알려진 '교회의 사회이념'을 발표하였다.

백용기교수/강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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