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믿음과 필요 없는(?) 믿음

필요한(?) 믿음과 필요 없는(?) 믿음

[ 목양칼럼 ]

장학규목사
2011년 08월 23일(화) 16:18

필자가 오래 전 전도사로 다른 교회를 섬기던 시절에 겪었던 일이다. 어느 주일날, 교회학교 어린이 오후 예배 시간에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면서 확성기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무슨 내용인지는 잘 알 수 없었으나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진 듯 했다.

조금 있으니 갑자기 예배당 문이 벌컥 열리더니 교회 권사님이며 집사님들 여러 명이 동시에 들이닥쳐서 가타부타 말도 없이 급박한 표정으로 예배당 안을 휘휘 둘러보더니 자기의 자녀며 손자손녀들 손을 잡아 질질 끌다시피 데리고 나갔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갑작스런 상황에 잠시 당황했던 내가 "이게 무슨 짓이냐?"고 호통을 치자 그제서야 아이 손을 잡아끌고 나가던 권사님 한 분이 "전도사님도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빨리 사모님과 가족들 데리고 피난가세요. 북한이 쳐들어왔대요"라고 말하며 총총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졸지에 예배당 안은 텅텅 비다시피 했고, 혼자서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 몇 명만 남게 되었다. 그 아이들과 함께 마저 예배를 드리고 있으려니 5분도 채 안되어 공습경보 해제 사이렌이 울렸다. 아이들을 끌고 나간 그 분들이 미처 집에 당도하기도 전이었을 것이다. 예배가 끝난 후 영문을 알아보았더니 이웅평 씨가 미그기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 귀순해 온 것을 북한군의 공격으로 오인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나에게는 큰 회의가 생겼다. 그날 예배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있던 아이들을 끌고 나간 그 분들은 자타가 믿음이 있노라 공인하던 분들이었고 평상시에도 늘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분들이었다. 참으로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그들의 그 뜨거웠던 믿음은 도대체 어디로 갔더란 말인가? 정작 믿음을 보여야 할 그 순간에 그들은 믿음을 보이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고, 믿음을 보이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신성한 예배까지도 더럽힌 것으로 여겨졌다. 가슴이 한참 뜨거웠던 목회 초년병이었던 내게는 무척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그 때문에 머리가 무척 혼란스러웠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에 걸쳐 기도하며 깨달은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는 말씀과 함께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도 나중에는 기둥같은 일꾼이 되었던 것처럼, 이들도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나중에는 큰 일꾼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아마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을 보이기 위한 부단한 훈련이 필요하리라.

얼마 전에 읽었던 글 중 나의 마음을 강하게 붙들었던 내용이 생각난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인데, '무엇을 위해 당신이 구원을 받았는지를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의 육신 속에 나타나기 위해 구속을 받았다. 당신은 전력투구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체현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 당신은 구속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 구속을 드러내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용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항상 고민되는 부분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하는 부분일 것이다.

때로는 모든 것을 성령님께 맡기고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심전력을 다해 주님의 일을 하라고 하는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해서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는데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적잖은 어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셨던 것처럼 항상 우리에게도 '네 믿음을 보이라'고 요구하신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그 은혜를 드러낼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행위'를 보고 구원해 주신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서 어떤 '행위'를 기대하시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생명까지 대가로 지불하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밖으로 드러나야 하지 않겠는가? 마치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하던 요셉처럼 말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는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무엇으로 내 믿음을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장학규 / 목사 ㆍ 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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