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행복의 조건

[ 생명의양식(설교) ]

김서년목사 suhnyunkim@hotmail.com
2011년 08월 23일(화) 16:10

▶본문 : 빌 2:12~1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행복하게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행복이냐?'고 물었을 때,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그래서 어떤 철인은 말하기를 "우리 인생은 행복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풀지도 못한 채 행복을 찾아 나선 방랑객과 같다"고 하였다. 사실 그러하다. 어떤 사람은 '행복이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행복이란 '주관적인 것'이란 뜻이겠다. 그러나 오늘 당장 먹을 것이 없어 허덕이면서, 내가 아무리 '나는 행복해, 행복해'하며 마음먹는다고 해서 행복해지겠는가?

그러고 보면 행복엔 어떤 '객관성'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무엇을 과연 행복의 조건으로 내세울 수 있겠는가? 무엇이 없어서 불행을 느끼는 사람에게 과연 그것만 주어지면 행복해질까? 흔히들 돈과 지위와 명예를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을 가진 자들을 보라. 여전히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엄연히 보게 되는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놀랍게도 행복의 극치를 고백하는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사도 바울이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금 말하노니 기뻐하라…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 우리가 좀처럼 들어볼 수 없는 그런 말이 아닌가? 그런데 이와 같은 행복의 극치를 외치는 말이 바로 '로마 감옥 속에 갇혀있는 가운데서 발하여진 말이란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성경에 묘사된 그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는 작은 키에 안질도 있는 사람이요, 주기적으로 발작이 오는 부끄러운 병도 가지고 있었다. 가정도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그런 그가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하리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무지 우리의 상식으로는 행복할 수 없는 조건 가운데서 그는 행복의 극치를 외치고 있다.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이렇게 행복을 느끼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그의 행복의 비결은 일차적으로 '예수님께서 나를 구속해 주셨다'는 구원의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가 나를 대신해 죽으셨고, 하나님 나라의 약속 있는 백성이 되게 해 주셨다는 사실에 그의 기쁨과 행복의 근본이 있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때때로 가족을 사별하고 슬픔을 당한 자에게 무어라고 위로할 것인가? 인간의 어떤 말도 위로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단순히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과 함께 영원의 삶을 누리고 있다'는 이 사실이 우리로 눈물을 그치게 하고, 그 언젠가 반가운 얼굴로 서로 대하여 보게 될 것이란 사실에서 우리는 소망으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을 소유한 자들은 이 같은 위로와 행복을 가질 수 있다.

또 다른 행복의 조건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소명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살아가는 동안 아무런 할 일도 없고,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행한 삶이 될 것인가?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형편 속에서도 나를 필요로 하시고 나를 들어 써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즐거워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을 모르며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만약 대통령이 나를 인정하고 맡기는 것이라면 우리는 기쁘게 일하게 될 것이다. 하물며 다른 사람도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필요로 하시고, 나의 하는 이 일들이 다 하나님께서 귀히 여겨 주시는 것이란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보람을 느끼며, 내가 하는 이 모든 일에 기쁘게 종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서년목사 / 벧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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