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생명의양식(설교)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3월 08일(화) 17:17

▶본문 :   마 5:14~16
"…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한 여자 대학생이 뉴욕시민의 친절도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목적지를 적은 깃발을 꽂은 로봇, 로봇은 직진만 할 수 있기에 부딪히면 움직일 수가 없는데 지나가는 사람 29명의 따뜻한 손길로 방향을 바꿀 수 있었던 로봇은 42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의 한 쇼핑몰에서도 실험을 했는데 실험이 시작하자마자, 로봇은 벽에 가로막혀 움직이지를 못했는데 1시간 동안 아무도 안 도와줘 실패로 끝났습니다. 2차 실험 역시 실패했습니다. 세 번째 실험은 목표 지점을 바꿔서 진행했는데 슬쩍 관심을 보이는 사람만 몇몇 있을 뿐 그 누구의 도움도 없는 안타까운 시간만 흘러갔는데 그 때 한 남자가 로봇에게 관심을 보였고 곧 로봇을 들고 목표 지점까지 들어다 주었습니다. 기계를 가지고 친절도를 측정한다는 것은 문제가 좀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좀 불친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권 관광객에게는 매우 친절하지만 동양인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방한한 외국인들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양 사람들은 70%이상 한국인이 친절하다고 평가한 반면 대만 32.8% 등 아시아권 관광객들은 한국인의 친절 정도를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했습니다.

우리의 불친절을 두고 '쌍놈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고분고분하면 '쌍놈'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까봐 불친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분명 아닙니다. 업무 때문에, 환경 때문에 친절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친절한 삶은 목적을 붙잡을 때 가능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장로교 신앙의 내용을 압축한 '소요리 문답'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의 제일된 목적이 무엇인가?"인데 그 답은 "사람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고 돼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된 삶을 살면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의 착한 행실, 친절을 보고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는구나"하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줘야 합니다. 요셉, 아브라함, 이삭 등 믿음의 선배들은 자신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훌륭한 설교란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설교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란 목적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사탄이 무서워하는 것은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우리는 불친절로 신음하는 사회 속에서, 친절 운동을 일으켜 어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친절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녹아들어 한 덩어리가 되어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 인격의 열매입니다. 아브라함은 친절 전통을 시작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취하셨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그것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것은 신령한 싸움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엔 항상 상급이 있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친절로 승리하는 여러분과 가정되길 원합니다.

친절의 시작은 미소로부터 출발합니다. 삶에 대한 보람에서 미소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웃고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 )

이삭은 '기쁨, 웃음'이란 의미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삭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웃음으로 받은 여유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할 때 장막 문에서 이 말을 들은 생리가 끊어진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창 18:12) 했고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믿지 않고 웃었기에 물론 책망도 받았습니다만 현실적이지 않은 엉뚱한 이야기를 듣고 무안해하거나 화내지 않고 웃음으로 받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웃으면 복이 옵니다. 찬송가 458장 "참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 받네"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짊어질 때 아픔을 안고 하나님의 전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염규석목사 / 광주노회 세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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