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사도의 발자취

요한 사도의 발자취

[ 교단 ] 고 신후식목사 추모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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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4일(수) 09:32

요한 사도의 발자취

림인식목사
증경총회장ㆍ노량진교회 원로

 
예수님의 12제자 중 대표적 인물은 베드로와 요한이었다. 요한복음 마지막 21장에 예수님은 친히 베드로에게는 목자의 사명을 맡기면서 순교할 것을 예고해 주셨다. 요한에게는 장수하면서 산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맡기셨다. 그리고 마지막 예수님께서 십자가상 에서 어머니를 요한에게 모시라고 하셨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위 해 목숨 바쳐 눈부시게 충성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성경에 영원히 남았다.
 
세계 사람의 이름 중에 'Peter(베드로)'와 'John(요한)'이라는 이름이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도 'John Calvin', 'John Wesley'를 위시하여 전 세계 사람 들 중에 'John(요한)'이 가장 많다. 그만큼 요한을 닮고 싶은 사람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 곁을 떠나가신 신후식 목사님은 성함은 요한이 아니지만 일생생활이 요한 사도를 닮은 생을 사셨다.
 
첫째, 고 신 목사님은 장수하셨다.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 유일의 장수 생존자였다. 본문에 "나 요한은 밧모 섬에 있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계시록을 도미티아누스(Domitianus)황제의 대 핍박 때 즉 A.D.80 때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때는 요한 사도가 1백세가 훨씬 넘었을 때이다. 요한 사도는 장수하였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내리시는 가장 큰 복은 생명과 장수이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셨다.(마,16;26) 생명은 우주보다 귀하다. 생명은 오로지 하나님께서만 홀로 주관하신다. 고로 장수의 복 이상 큰 복이 없다.
 
제가 알기로는 신후식목사님이 106세까지 건강하게 활약하시다가 부르심을 받아 가신 것은 한국 목회자 중에서는 최장수시다.
 
작년에 있었던 일본 개신교 1백50주년 대 행사에 102세 되신 일본 목사님이 나와서 우렁찬 목소리로 격려의 말씀 하는 것에 놀랐다. 그러나 그 어른도 그후 곧 세상을 떠나셨다. 신후식목사님은 세계 최장수국 일본의 최고령 목사님보다도 더 장수의 은혜를 받으셨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쉽지 않은 기적적인 큰 복이다. 근간 하나님께서는 한국에 G20을 비롯하여 스포츠, 예능, 심지어 한국 상품들까지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켜주심을 알 수 있다. 이 모두가 한국교회 세계선교의 길을 열어주시는 섭리로 확신한다. 신후식목사님의 장수로 수명까지 연장시켜주시는 증표다.
 
100세를 산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100세인의 자녀, 형제자매도 대부분 장수한다고 한다. 조상들이 단명하면 그 자손들은 '우리 집안은 오래 못 산다'는 생각이 있어, 항상 불안 심리 속에 산다. 이에 비해 장수 집안 자손들은 '우리 집안은 장수한다'는 장수 희망을 갖게 되고, 자신감을 갖고 살게 된다. 신후식목사님이 장수의 복을 받으심으로 장수의 본, 즉 샘플이 되셔서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장수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 신 목사님과 동기이신 방지일목사님은 백세신데 젊은이들 이상으로 맹활약을 하고 계시다. 아마도 방 목사님께는 모세의 기록을 깨게 해 주실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신후식목사님의 장수가 한국 교회 전체의 복이다. 방지일 목사님의 장수는 한국교회 전체의 희망이다. 신후식목사님은 한국의 제2의 장수 요한 사도시다. 앞으로 한국교회에 더 많은 제2의 장수 요한 사도가 배출된다는 예표이다.
 
둘째, 사랑의 사도였다. 사도요한의 기록 중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많다. 요한을 '사랑의 사도'라고 부른다. 그의 젊었을 때 제자 중에 타락하여 산적이 된 자를 요한 사도가 노구를 이끌고 찾아가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부르며 권면하였을 때 그의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아 회개하고 돌아 왔다는 전설이 있다. 그가 만년에 거동이 안 될 때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업어 다 강단에 모시면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라고 되풀이 말씀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신앙도, 사명도, 인격도, 생활도, 영성도 무르익어 완숙되면 사랑이 된다. 속죄애가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적이다. 신후식목사님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너그러운 목자'이다. '너그럽다'는 것은 용서하는 사랑,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인내와 화목의 사람 즉 사랑의 목자라는 뜻이다. 신 목사님은 젊었을 때 평양 숭실대학 재학 중 여름 방학에 전도팀을 짜서 두매 산 꼴 농촌에 찾아가 심지어 오물통까지 져 나르며, 손 닫는 대로 농사일을 돕는 한편, 애들을 모아 동요와 찬송가를 가르치고, 성경 이야기와 글을 가르쳤다. 동리 노인들을 찾아 도와드리며 전도 봉사하였다. 그의 가족과 함께 사는 좁은 단칸방은 언제나 자기보다 고생하는 이들을 불러들여 재우는 임시거처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교장을 맡았을 때도 봉급을 미리 가불하여 가난한 학생들을 도와주어 늘 생활비가 부족하였다. 목회하실 때는 너그러운 아버지 같은 목회자이셨다. 목사님은 항상 유머로 분위기를 훈훈하게 하셨다. 제가 대구 영락교회 시무할 때 대구 YMCA 큰 행사에 참석했을 때, 신후식목사께서 총무 목사가 큰일을 잘 했다는 것을 유머로 "YMCA 총무 이 목사는 평양 신학교 경제과를 졸업했다"고 하여 회중을 크게 웃겼다. 신 목사님의 유머는 상대방을 은근히 높이는 고귀한한 유머였다. 
 
은퇴 후 미국에 가셔 서는 이민 목회도 하시고, 시끄러워진 이민교회들의 요청을 받아 강단을 지켜주면서 원만하게 수습하여 교회를 회복시키는 일들을 많이 하셨다. 화목의 사자이셨다.
 
빅토리아 여왕이 나이팅게일(F. Nightingale)에게 준 기념 훈장에 "긍휼을 행하는 길은 하나뿐이 아니다. 말로도 할 수 있고 돈으로도 할 수 있다. 돈도 없고 말로도 할 수 없으면 눈물로도 할 수 있다"라고 새겨져 있다.
 
신 목사님이야말로 생활 전부가 긍휼이요, 자비요, 사랑이었다. 신후식목사님은 한국교회 모든 목회자들에게 제2의 사랑의 요한이자, 사도의 본을 보여주셨다.
 
셋째로 신 목사님은 예수의 증인이셨다. 초대교회 지도자인 바울 사도는 기독교 개척자였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양을 치는 목자였다, 요한 사도는 그리스도의 증인이었다. 본문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요한 사도를 장수하게 하신 것은  예수님과 함께하며 직접 보고 들은 증인으로 오래 증거하게 하신 것이다.
 
요한은 순교 이상의 고난을 받으며 증거하였다. 요한을 끓는 기름 가마에 넣었는데도 죽지 않아 지옥 같은 불모의 섬 밧모 섬에 유배를 보냈다는 전설이 있다. 신후식목사님이야말로 복음의 증인 사명에 있어서도 요한 사도와 같다. 신 목사님은 남녀 중ㆍ고등학교 교장으로 감수성이 왕성한 남녀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심어주고 애국정신과 그리스도인 생활실천을 훈련시켜 참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많은 인재를 배양하였다. 신 목사님은 외유내강하셨다. 너그러우신 분이지만 내심 신앙과 애국에 있어서는 철저하셨다. 숭실대학 재학 때는 광주학생사건으로 옥고를 치르셨다. 일정 말기 때는 계성학교 출신 장천실 씨의 반일사건으로 "반역자를 키워낸 주모자다"라는 죄목으로 진해 헌병대와 부산 검사국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다. 고문이 너머 심해 "살아 나갈 것 같지 않다"고 까지 생각했다. "차라리 주님을 위해 죽자!"고 삶을 포 하고 나니까 평안이 왔다고 하셨다. 해방되던 해 해방 2개월 전인 6월에 풀려나오셨다. 신후식목사님은 주를 위한 핍박과 고난을 받으시며 복음을 전하셨다. 일본, 중국, 인도를 위해 일한 프란시스 자비에르 (Francisco de Xavier. 1506-1552)선교사는 그가 청년 때에 아시아 선교사로 나갈 것을 결심하였다. 그의 친구들이 미개한 지역에 가서 고생하지 말라고 여러 가지로 만류하였다. 그러나 그는 "어떤 어려움이나 죽음이 나를 기다린다고 해도 나는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그것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라고 하며.“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얻게 하는 일이라면 나는 만 번의 괴로움을 당해도 싫지 않다"고 말했다. 어느 시대나 구령의 사명이 철저한 하나님의 사람이 나라와 사회를 바꾸어 놓는다.
 
신후식 목사님은 평생을 구령의 목표대로 제2의 요한 사도처럼 사명을 다하셨다.
 
어떤 부인이 어느 공동묘지 관리인에게 한 주도 거르지 않고 편지와 우편환으로 돈을 보내며 "신선한 꽃다발을 사서 죽은 내 아들 묘소에 놓아 달라"고 부탁하여 왔다. 그런데 어느 날 병색이 짙어 보이는 중년부인이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 직접 찾아 와서 "오늘은 내가 직접 내 아들 무덤에 꽃을 놓아주려고 왔습니다. 의사의 말이 내 건강이 오래갈 것 같지 않다고 합니다"고 말했다. 묘지 관리인이 부인에게 "저는 부인이 보내준 돈으로 꽃을 사다가 놓아 주었지만 매우 유감스럽다고 생각하며 하였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부인이 깜짝 놀라며 "아니 유감스럽다니요?"라고 반문했다,
 
관리인이 "유감이지요.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보고, 맡을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 꽃을 병원 같은 곳에 입원해있는 병자에게 보여주면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며 병도 낳을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부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돌아갔다, 그로부터는 편지와 돈을 보내오지 않았다. 몇 달 후에 그 부인이 왔는데 건강 한 모습이었다. 묘지 관리인의 말을 듣고 그때부터 병원 환자들에게 꽃과 선물을 나누어 주었더니 우선 나부터 마음이 기쁘고 건강이 좋아졌다고 하며, 꽃을 받는 환자들이 모두 반가워하고 차도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비로소 사랑의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과 삶의 의미를 찾았고 새로운 사명감이 생겼다며 기뻐하였다.
 
우리 살아 남아있는 사람들의 최상의 생활자세는 가신 분을 추모하며 슬퍼하기보다 잘 마치고 영광의 보좌 앞에 보상받으시는 신후식목사님을 영안으로 바라보며 그분이 보여준 대로 남에게 실천하는 것이다. 신후식목사님은 요한 사도의 발자취와 같이 장수의 발자취를 남기시고 사랑의 발자취를 남기셨으며, 증언, 즉 구령의 발자취를 남기셨다.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는 사도 요한처럼, 선배 신후식목사처럼, 더욱 생명력 있게 사랑의 실천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힘 있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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