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난 자리

꽃이 지고 난 자리

[ 기고 ]

강은성 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11월 11일(목) 11:30

어릴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어온 말 중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모름지기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거기에 하나를 추가한다면 "꽃은 지고 난 자리에 씨앗을 남긴다"고 덧붙이고 싶다.

정원에서 이른 여름부터 피어나 은은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던 더덕 꽃이 계절이 바뀌어 지므로 모두 다 말라지고 꽃이 진 자리에 꽃씨 주머니가 자리를 잡고 있다. 꽃씨 주머니 안에는 새 생명을 품고 있는 꽃씨들이 가득 차 있다. 꽃씨 주머니는 씨앗을 오랜 시간 머금고 씨앗이 새 생명을 싹틔울 수 있도록 성숙해 지기까지 기다린다. 그러다가 씨앗이 성숙되어지면 꽃씨 주머니는 벌어진다. 급한 마음에 꽃씨 주머니를 열고 씨앗을 꺼낸다면 그 씨앗은 싹을 틔울 수 없는 쓸모없는 씨앗이 되고 만다.

며칠 전부터 꽃씨 주머니가 벌어진 것을 몇 개 발견하고 씨앗을 받아두었다. 씨앗을 받는 시기가 늦어지면 꽃씨 주머니가 완전히 벌어지고 씨앗은 아래로 그냥 씨앗을 쏟아 놓는다. 씨앗을 거두지 않으면 다음해 봄에 그 자리에 새로운 더덕 순이 솟아나게 된다. 더덕 씨앗을 거둬들이면서 생각해 보았다. 한 송이 꽃이 피었던 자리였는데 그 곳에는 수십 개의 씨앗을 남겨두었다. 이것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원리라고 생각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같은 원리이다. 예수님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로, 한 알의 밀알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꽃이 지면서 12제자라는 꽃씨들을 남기고 떠나셨다. 그 제자들도 꽃을 피웠고 또 다시 수백, 수천의 꽃씨들을 남겼기에 온 세상에 복음의 꽃들로 피어나게 된 것이다.

더덕 줄기도 수많은 꽃송이를 피웠고 한 송이 한 송이의 꽃이 지고 난 자리에 또 수 십 개의 꽃씨를 담은 주머니를 남겨두고 떠났다. 하나에서 수 십 개로 많아지는 하나님이 주신 임무인 생육과 번성의 원리를 실행하고 떠나갔다. 꽃씨 주머니에서 받아낸 씨앗은 새봄에 땅에 뿌려져 또 다른 수많은 꽃을 피울 수 있는 더덕 줄기로 자라날 것이다. 내가 필요한 곳에 씨앗을 뿌릴 것이고 다른 분들에게도 나누어서 씨앗을 뿌려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 것이다.

목회도 꽃이 피고 씨앗을 남기는 일이다. 목회를 하는 동안 크고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작고 초라하고 냄새도 없는 꽃으로 피어있는 분들도 계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꽃이 아니라 꽃이 지고 난 자리이다. 혼자 꽃으로 피어서 영광을 누리고 멋진 목회를 하다가 씨앗도 없이 사라지는 꽃이 될 것인지 아니면 비록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 자리에 생명을 잉태한 무수한 씨앗을 남기는 목회를 하다가 떠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얼마 전 한국교회에서 크고 아름다운 꽃으로 목회를 하셨던 분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분이 떠난 자리를 살펴보았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였다. 그분은 한국 교회에 피어난 수많은 크고 아름다운 꽃 중에 최고로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으로 임무를 다했을 뿐만 아니라 지고 난 자리에 수천, 수만의 많은 씨앗을 남기는 일들을 하시고 떠나가셨다.

씨앗을 거둬들이는 이 가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다짐을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삶과 목회가 꽃만을 피우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꽃씨를 남기기 위해서인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으로만 살다가 아무 씨앗도 남기지 못해 잊혀지는 꽃이 아니라 비록 작지만 은은한 꽃으로 피어 있다가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생명을 담은 수십 수백의 씨앗을 남기는 꽃으로 살다 가리라. 그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는 씨앗을 남기는 목회일 것이다.

강은성 목사/옥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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