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의 이유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의 이유

[ 기고 ] - 서울기독교영화제에 출품된 영화 '신과 인간'을 보고나서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11월 03일(수) 16:50

목회 사역의 한 가운데서 번잡하게 살다보면 가끔은 목사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경우가 있다. 한창 뭔가를 해내야 하고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예기치 못한 질문으로 잠시 멈춰서야 하는 것이 당황스럽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처음 소명을 받았을 때의 그 순수한 열정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것 같고, 목회자로서 해야 할 많은 일들에 이리 저리 분주하게 다니다 보면 목사도 결국 기업이라는 조직의 한 일원과 같은 것은 아닌지 자조하며 자책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게다가 요즘 같이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능력을 입증 받지 못해 목회자로 초빙 받지 못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나와 같은 많은 목사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 목사로서 나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이러다가 도태되는 것은 아닌가? 3년 안에 초빙 받지 못하거나 목사의 사역이라고 인정받는 일을 하지 않게 되면 무임으로 처리되고 결국 면직 처분되는 현 상황에서 목사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꽤나 오랫동안 고민해보았던 것 같다.

목회자로서 사역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목사로서 계속 남아 있을 이유가 있는가? 목사 말고는 할 일이 없어서 내가 이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인가? 유학시절, 주변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여겼던 어렵고 힘든 때에 차라리 다른 길을 갈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신학생이라는 정체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소명 하나 붙잡고 살아갔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연속되면서 그것마저 힘겹게 느껴진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상황들을 극복하고 유학 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 앞을 보려고 하지 말고 지금의 순간을,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자는 결단 때문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대체로 삶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특히 나의 존재 가치나 의미에 대해 확신하지 못할 때 언제나 찾아왔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에도 그랬고, 군대에서도 그랬고, 대학 시절이나 유학시절에도 그랬고, 그리고 목사로서 살아가는 지금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어야 할 목사로서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제8회 서울기독영화제에서 상영된 '신과 인간'(자비에 보부아, 2010)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는 보도와 함께 소문으로 들었을 때는 사제들의 순교이야기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직접 영화를 보면서 단순한 순교이야기가 아님을 알았다. '신과 인간'을 통해 필자는 목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기를 요구받는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목사로서 의미를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영화는 테러의 위협으로 공포에 휩싸인 1996년 알제리 어느 마을의 아틀라스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으로서 나약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수도원 사람들, 영화는 바로 그런 모습의 수도원 형제들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를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이 보여준다.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떠날만한 충분한 명분이 모두에게 있었지만, 그들은 몇 차례의 의사교환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들을 필요로 하고 그것이 부르심의 이유라고 생각해서 모두가 남아 있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고민했으며, 서로의 의견을 묻고 대답하면서 각자의 생각과 결정들을 소통하는 가운데 결국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의사는 의사로서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고, 수도사는 수도하는 사람으로서 할 일이 있었으며, 또한 사제는 사제로서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발견의 과정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관객은 수도원 사람들의 고민과 번뇌를 공유할 수 있었고,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듯, 그들의 논의 과정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나의 생각도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이 남기로 한 또다른 이유는 그들의 존재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언급된 나뭇가지와 새의 비유이다. 산책 중에 보게 된 날아가는 철새들을 빗대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다시 말해서 상황에 따라-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던 사제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전혀 다르게 이해된 말을 듣게 된다. 당신들은 가지이고 마을 사람들은 새들인데, 당신들이 떠나면 우리는 어디에 깃들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수도원 사람들의 존재는 단순히 그들이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마을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삶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무엇을 함으로써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목사로서 존재 이유는 무엇이고, 어디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던 필자는 영화를 보고 다음과 같은 생각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깃들 수 있는 나뭇가지이다. 그들과 구별된 존재가 결코 아니며, 그들의 삶 한 가운데서 인간으로서 함께 살아가면서 함께 생각하고 또 함께 고민하면서도 그들이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등받이다. 그리고 목사가 기댈 분은 바로 하나님이다. 목사의 안식과 평안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며,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이다.

이것은 비단 목사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모든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또 다른 사람들이 깃들 수 있는 나뭇가지이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들이 지치고 힘들 때 등받이인 것이다. 인간은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는 부활을 소망하며 죽음 앞에서도 지극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최성수 / 목사 ㆍ 장신대 출강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