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유사성

믿음의 유사성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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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31일(화) 19:55

사람들은 가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고정관념 속에 나를 가두어 놓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이 생각에서 탈피하지 않고 창의적인 사고를 막는다면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이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설사 아는 것이 있다 해도 외부의 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참되게 아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소경이 남을 위해 촛불을 비춰줄 수는 있지만 자기를 밝히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이 어떤 것을 모르고 있으면서도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은 눈을 감아 버리고 자신이 아는 것만 웅변하듯 외친다. 참으로 위험한 사람들이라고 사료된다. 교회와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득세를 하곤 하였다.

교회사를 공부하다 보면 '믿음의 유사성의 시대'가 있었다. 믿음의 내용은 사라지고 믿음의 형식, 곧 껍질만 남았던 시대이다. 세계 문화사와 교회사에서는 중세시대를 가리켜 '암흑기'라고 호칭한다. 참으로 암울했던 시대를 대변하는 명칭일 것이다. 교회가 세상을 삼킬 정도의 권력과 부요를 누리고 가장 왕성한 교세를 확장하는 시기였지만 참 믿음(sola fide)은 사라지고 믿음의 유사성(solidatair)만 남았던 시대이다. 벌과 나비는 꽃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든다. 그러나 요즘 가짜 꽃이 진짜 같아 나비나 벌들이 착각할 것처럼 아름답고 선명하다. 진짜 꽃처럼 보이지만 생화가 아닌 조화를 가리켜 '꽃과 유사하다'라고 표현한다. 조화와 생화는 육안으로 보아서는 좀처럼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화는 향기가 없다. 그리고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 이처럼 생화와 꼭 닮은 조화가 판을 치던 시대를 '믿음의 유사성 시대'라고 말한다.

믿음의 유사성(solidatair)이라는 단어는 아주 역겹고 무서운 말이다. 영적인 암흑기를 대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영적 암흑기에는 유명한 성당과 사제는 많았으나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많은 숫자'에 불과했던 시기이다. '많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가 많다', '성도 수가 많다'는 것을 먼저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만일 그 '많음'이 믿음의 유사성(solidatair)에 해당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아시다시피 교회를 교회되게 했던 지나온 교회사는 영적으로 잠자는 다수의 역사가 아니라 깨어있는 소수의 역사였다. 지금도 이 세상은 여전히 영적으로 죽음의 잠을 자고 있다. 지구상의 수많은 교회들이 과연 깨어 있다고 보는가? 교회 안에 신자들은 많은데 진짜 신자를 찾기 힘든 시대가 아닌가 싶다. 이들은 물론 교회가 해왔던 것을 흉내 내고 있다. 하나님 말씀으로 선교를 하고 사회봉사도 한다. 그러나 과연 사도행전에서 보여주었던 영적각성과 회심을 일으키는 풍성한 사건들은 얼마나 일어나는가?

이 세상을 주도하고 도도하게 흐르는 성경의 시대에 걸맞는 교회(신자)가 그리워지는 시대이다. 세속의 거센 파도를 거스르며 세상을 압도해 가는 참 교회(참 신자)를 배출해 내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머지않아 유사한 교회인지 아닌지, 유사한 신자인지 아닌지, 진짜 목사인지 아닌지가 가려질 것이 뻔하다. 우리는 그날을 바라보며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송재식 / 목사 ㆍ 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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