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 선교기념관, 유니온교회 위해 세워졌다

양화진 선교기념관, 유니온교회 위해 세워졌다

[ 교계 ] 백주년협의회 87년 발행한 총람에 유니온교회와 선교기념관과의 관계성 명기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0년 08월 31일(화) 16:43

한국교회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는 본보 8월 21일자(2766호)에 보도된 양화진 기사와 관련, 최근 본보와 총대들에게 반박 보도 자료를 발송했다. 한국교회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반박한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마치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선교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선교기념관을 유니온교회가 소유하려고 한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선교기념관의 소유권은 1986년 10월 10일(한국기독교 선교기념관 헌당식이 열린 날) 이후로 줄곧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의 것이었다. 유니온교회는 단지 선교기념관 2ㆍ3층 대강당을 예배처소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받았을 뿐이다. 따라서 "건물주는 100주년협의회이고 임차인은 서울유니온교회라는 것이 분명하다"는 협의회의 구구절절한 주장은 사족(蛇足)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 부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선교기념관의 헌당식이 열리던 1986년 즈음의 분위기. 바로 100주년협의회와 유니온교회,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의 부분이다. 그렇지만 당시 삼각(三角)의 명확한 관계성을 증명해 줄 문건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과 증언할 수 있는 원로 중 대부분이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점이 사실관계를 따지기에는 근본적인 어려움을 주고 있다.

   
▲ 선교기념관 설립 당시부터 예배를 드려온 유니온교회 교인들이 100주년기념교회의 일방적인 예배시간 조정 통보를 받고 지난 2007년 8월 15일 기념관 밖에서 예배를 드린(사진 위) 이후 서울시내를 전전하다 현재는 연세대학교에서 예배 공간을 얻어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사진 아래).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고해서 당시를 반추해 볼 자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1987년도 발행한 '한국기독교100주년 기념사업총람'을 보면 선교기념관이 유니온교회('외국인연합교회'와 혼용)의 예배처소로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총람에는 선교기념관 헌당식이 열리던 날의 현장 분위기를 "오후 2시부터 기념관 2층 예배처소에서 열린 헌당식에는…중략…선교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3백50평 규모로 1층은 회의실ㆍ선교기념실로, 2ㆍ3층 대강당은 외국인연합교회 예배처소로 쓰이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날 예배에는 고 한경직, 강원용목사를 비롯해서 최순영장로, 정연희권사(당시 집사), 염보현 당시 서울특별시장, 원일한박사 등이 참석했으며, 예배 후 축하연은 외국인연합교회가 열었다. 1980년대 중반, 마땅한 예배처소를 구하지 못하고 서울시내 호텔이나 YMCA 강당 등을 떠돌며 예배를 드리던 유니온교회 교인들을 위해 선교기념관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헌당식 날 순서를 맡았던 복수의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보다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염보현 당시 서울시장은 "낯선 이역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애쓰시다 돌아간 외롭고 숭고한 영혼들이 잠든 땅입니다. 그런 땅에 선교기념관을 세워 그분들의 후손들에게 헌당하게 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고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유니온교회가 안정적인 예배처소에 둥지를 틀게된 것을 축하하며, 축사를 전했다.

이뿐 아니다. 축사에 이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 고 원일한박사(연세대)의 발언을 살펴보면 당시 100주년협의회와 유니온교회 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계약의 실체를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원일한박사는 양화진 묘역에 묻혀 있는 많은 사람들을 추억하면서 "그분들을 기념해 주기 위해 이렇게 좋은 기념관을 마련해 주어서 정말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역사적으로 본다면 바로 백년 전 10월에 서울외국인교회(가) 맨 먼저 모여서 희망 중에 자기 자신들의 성전을 짓겠다고 결정했지만 꼭 백년 후에 처음으로 서울외국인교회 자기자신의 성전을 얻게 되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선교기념관을 예배처소로 사용할 수 있게된 감격과 감사의 인사를 동시에 전했다.

이날 원일한박사는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기념 때에 한경직목사와 박치순목사님, 그때부터 이 자리(양화진)에 와서 기념관 짓자고 하였습니다"라고도 말했다.

이는 이미 본보가 보도한 1983년 한경직목사의 영락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우리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서 이 외국 사람들을 위해서 예배당을 지으려고 힘쓰는 중입니다.")에서 말하는 예배당이 바로 양화진에 있는 선교기념관임을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고 있다.

이토록 양화진 선교기념관의 용도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100주년기념사업회와 100주년기념교회는 지난 2007년 유니온교회를 선교기념관에서 추방했다. 2005년 양화진 선교기념관에 들어온 100주년기념교회는 2년 동안 유니온교회와 불편한 동거관계를 유지하다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무시한다' '주차장 사용 등으로 외국인들이 잦은 시비를 한다'는 등의 사소한 문제제기 끝에 유니온교회에게 '예배시간 조정 명령'을 한다.

당시 100주년기념교회는 1986년부터 선교기념관에서 주일 오전 9시30분에 예배를 드려오던 유니온교회에게 (2007년) 8월 5일부터 오후 4시30분에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했다.

2007년 8월 5일, 유니온교회는 십수년 예배를 드려오던 예배처소를 독립교단연합회에 속한 100주년기념교회에 빼앗기고 선교기념관 앞 계단에 앉아 예배를 드린 뒤 정든 둥지를 떠나고 말았다. 이날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를 만난 100주년협의회의 김경래장로는 심지어 "현재 유니온교회 교인들은 선교사들과는 관계가 없고 (선교사들과 비교해서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와 있는 '삯군'에 불과하다"고 매도하며, 쫓겨날 만해서 쫓겨나는 것일 뿐 주인이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호텔 등지를 떠돌다 우여곡절 끝에 양화진 선교기념관에 한국교회의 배려로 둥지를 마련한 유니온교회는 양화진 묘역 등을 관리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100주년기념교회와 100주년협의회에 의해 추방돼 현재 또 다시 예배처소를 찾아 떠도는 나그네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장창일 jangci@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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