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원형 회복

기독교 신앙의 원형 회복

[ 기고 ] 함께 생각하며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7월 13일(화) 18:40

기독교는 십자가 신앙이다. 십자가는 보혈의 희생이요, 그 희생에 참여해야 복이 있는 사람이다. 한국은 세계선교 역사상 1백여 년만에 전 국민의 20%가 복음화되었고 전국이 교구 안에 연결되고 세계 50대 대형교회 중 24개를 갖고 있으며 선교사 파송 세계 2위 국가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20% 이상의 신자 수를 갖고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각 방면에 신앙적 분위기와 성경의 원리가 실제 생활로 체감, 확인되고 있는가? 그러려면 지도자들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고, 교회들이 초대교회로 환원돼야 한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요, 상하계급 조직이 아니라 평등한 형제조직이어야 하며 항상 부드러움과 접촉 가능한 모습으로 세상과 만나야 한다. '세상에 대하여'가 아니라 '세상 안에' 존재해야 한다. 교회도 변질될 수 있다.

많은 서양교회들이 그 원형을 벗어날 때 어려움을 겪었다. 가톨릭도 면죄부 판매로 종교개혁을 맞게됐고 현재의 교회들도 곳곳에서 이겨놓고 지는 경기를 하고 있다. 본 회퍼는 예수님을 가리켜 '타인을 위한 존재'라고 규정하면서 모든 신앙인도 작은 예수가 돼야한다고 일러주었다.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따라가는 것이 크리스찬 공동체(교회)의 사명이다.

예수님은 3중 사역을 실천하셨다. 교육목회, 선교목회, 치료목회가 그것이다. 교회는 교육공동체(교육관), 선교공동체(예배당), 봉사공동체(복지관)이다. 모든 예산과 인적구성이 이 세 영역에 균형있게 분배되어야 한다. 건물관리비가 교육예산보다 많거나 차량운영비가 구제비보다 많거나 목회자 사례비가 전도비보다 많으면 이미 본질을 벗어난 비 성경적 조직이요, 사회직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왜 교회가 있어야 하는가? 베드로(마 16:16)와 마르다(요 11:27)의 신앙 고백 위에 하나님의 교회가 예정되었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1백20명이 전심으로 기도하며 성령을 체험함으로 초대교회가 출발되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서로 교제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분배하여 지역사회에 칭찬을 받았고 그 결과 날마다 믿는 자가 늘어났다는 것이 살아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응답하는 성도들의 모임으로서 세속과 성별된 것이다.

한국교회는 재물과 사람을 모으는데 성공했지만 기르고 세워주며 다시 파송하는 순환체제가 미흡하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 법이니, 고여 있는 교회의 잠재력을 어서 빨리 밖으로 흘려보내야 한다. 성도들은 교회를 위해, 사회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해야 한다. 이 흐름이 막히거나 약해지면 문제가 생긴다.

이제 전국의 각 교회로 돌아가서 우리의 일상을 통해 장로들의 생활신앙으로 싱싱한 열매를 맺자. 거룩한 것이 타락하고 변질되면 훨씬 더 추하고 남루하다.

소금은 짠맛이 있을 때 소중한 것이지 만약 이 짠맛을 잃으면 흙보다도 못해져 천덕꾸러기가 되고 사람들의 발밑에 밟히고 만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철저히 동행, 동거, 동감하는 것이다.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성취시킨 것이 '십자가 구속' 사건이다.

기독교의 원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고 초대교회로 환원해야 하며 구원의 초심을 잊지 말고 늘 애통하면서 의를 위한 핍박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 교회 안에서 장로인 나는 믿음의 자녀를 몇 명이나 길러냈는지 헤아려 보자. 신앙의 원점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김형태총장/한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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