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교회의 책임은 없는가

자살, 교회의 책임은 없는가

[ 기고 ]

한국기독공보 ches@pckworld.com
2010년 06월 25일(금) 10:31

통계에 의하면 국내에서 하루 평균 35명이 자살을 한다고 한다. 1개월에 천여 명, 1년이면 1만3천여 명 10년이면 13만 명이 자살한다는 통계 수치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안타까운 것은 자살의 심각성은 알면서도 누가 왜 어떤 이유로 자살하는지 연구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자살 보도들을 보면 세상이 자살을 미화해서 보여 주는 것 같다.

'교인들도 자살을 하는구나 그래도 천국에 가는가 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이 잘못 왜곡되어 보이는 것에 교계는 큰 충격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소리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더욱 안타깝다.

자살(自殺)은 자기 책임을 회피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비윤리적인 행위이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계의 개신교나 천주교에서는 자살을 다같이 정죄한다.

교부 어거스틴은 "자살은 살인이며 본질상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는 자살자의 장례 집례를 거부하였으며, 신자의 공공묘지에 매장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신학자 칼 바르트도 "인간의 삶은 자기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소유이다. 인간이 자기 삶의 심판자가 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자살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경솔한 행위이며 큰 죄악이다"고 하였다.

생명은 근본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가 침해할 수 없는 거룩한 영역이다. 인간은 생명을 받은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자살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반역이며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이다.

자살은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 가족과 이웃, 사회와 국가에 지고 있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인간은 엄숙하며 생명은 존엄하다. 그러므로 삶은 고귀한 목적을 행하여 참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6계명에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다.

자살은 존귀한 생명을 경시하는 행위며, 계명을 거역하는 죄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이미 기독교인임을 포기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자살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자살자의 관에 십자가가 표시된 관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두 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행위이다. 자살자의 관에 십자가 표시의 관보를 사용하는 것을 결코 허락할 수 없다.

자살자의 묘비에 십자가의 표시와 성도라는 표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묘비는 묘에 묻힌 사람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그래서 고 아무개의 묘라고 기록한다. 그런데 자살자의 묘비에 십자가의 표시와 성도 아무개의 묘라고 기록할 수 없다.

자살자의 장례를 목사가 집례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에서 자살자의 장례 집례를 거부했으며 기독교인 공동묘지에도 함께 하는 것을 거부했다. 역시 우려되는 것은 목회 현장에 혼란이 있는 것은 현실이다.

자살자의 장례집례는 목사의 신앙 양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성숙된 기독교 장례문화가 확실하게 정착되었으면 한다.

살인과 자살 그 책임이 한국 교회에는 없는가? 자살자는 살인죄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교인들에게 신앙교육을 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고 강하게 느낀다.

이에 제안한다. 먼저 총회 차원에서 신학적으로 연구하여 지침서를 마련해야 한다. 또 지침서를 중심으로 신학교에서 교육을 철저하게 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침서를 가지고 교회에서 신앙교육을 바르게 시켜야 한다. 그리하면 한국교회에 장례문화가 바로 세워지며 목회에 혼란이 없게 될 것이다.

생명은 그 자체가 신비하고 고귀하다. 그러므로 잘 살아야 한다. 사랑해야 하며, 반드시 그 생명은 구원을 받아야 한다.

너무나 고귀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 하면서 가치 있게 살아야한다. 게으름이나 비윤리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살인이나 낙태, 자살과 같은 행위는 더 이상 계속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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