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宣風)

선풍(宣風)

[ 목양칼럼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6월 23일(수) 10:10

지난 6월2일 선거를 앞두고 북풍(北風)이니 노풍(盧風)이니 하여 바람이 많이 불었다. 풍(風)은 바람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한 집안의 대대로 이어오는 풍습이나 범절을 '가풍'이라하고, 학문에서의 태도나 경향을 '학풍'이라한다. 풍은 표출된 문화에 그치지 않고 그 조직의 이념과 정신을 읽게 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공동체를 움직이는 바람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공동체의 성격과 이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6ㆍ25를 맞이하여 공산당의 야만적인 행위를 기억하는 사람은 벌써 젊은 세대의 말로는 '한 물간' 사람들이다. 그들이 산 증인들인데도 말이다. 천안함은 사실이 아니라는 철학적 사고 위에 선 사람들은 아무리 외쳐대도 사실이 아닌 것이다. 바람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면 히포크라테스의 헌신의 바람은 의사들의 선서가 되었고, 요한웨슬레이의 기도바람은 감리교를 탄생하였고, 한국교회의 기도와 성령 바람은 선교의 바람을 일으켜서 세계 각국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본교단의 세계 82개국 6백34가정 1천1백68명의 선교사들은 교단의 기도 바람을 타고 날아가 '예수바람'을 잔잔히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신바람 나는 선교 속에는 성령바람이 보이지 않게 세계를 향하여 불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 하였음이라"고 말씀하셨다. 핵심과 상관없는 것들을 정리하여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돌아가는 바람이, 곧 선교인 것이다.

한국 선교사의 사역현장은 순수원주민 사역, 한인 디아스포라와 겸한 원주민사역, 한인디아스포라 사역 등 세 부분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세 부분 가운데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나름대로 모두 특성과 개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가시적인 것을 선교로 평가를 하는데 문제가 있다 이 즈음이면 의식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본다. 자기들이 파송한 선교사의 말보다 본말이 전도된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도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다. IMF가 왔다고 선교비를 중단하면 선교사 일가는 순식간에 국제 고아가 된다. 선교사들은 교차 문화 속에서 피선교국의 눈치를 보며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선교를 하고 있다. 이미 파송한 선교사들에 대한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왜 선교가 필요한가(Why mission)?'하는 단계를 벗어난지 오래다. 선풍(宣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일으킬 것인가? 하는 '하우미션(How mission)'의 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의 일이다. 파라과이에서 선교하던 시절, 모 부장님의 방문을 받았다. 성심 성의껏 나름대로 최선의 것을 그분께 대접했다. 없는 돈에 고국에서 온 그분께 최선의 호텔을, 최선의 먹을 것을 대접해드렸지만 그 분에게서 돌아온 말은 "이것이 사람 먹는 음식이냐" "여기가 사람 자는 곳이냐"는 것이었다.

그 때는 하도 기가 막히고 너무 슬프고 억울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 일은 십수년이 지난 오늘에도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건이다.

철저한 신중심(Theocentric) 지향적 선풍(宣風)은 복음화된 교회를 만들어 주며, 선풍적(宣風的) 선교는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게 된다. 세계 곳곳의 오지에서 '예수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의 선교사들에게 아낌없는 성원이 필요하다.

김춘근 / 목사 ㆍ 포도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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