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와 싸움닭

반계와 싸움닭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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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15일(화) 17:51

김춘근 / 목사 ㆍ 포도원교회


6ㆍ25사변이 나고 휴전이 될 무렵에 유행하던 군중오락은 닭싸움이었다. 시장 어귀에 싸움닭을 중심으로 하여 빙-하니 둘러서서 내기까지 걸고 응원을 하였다. 주인은 옆에서 싸움닭이 뛰는 대로 겅중겅중 뛰면서 손뼉을 쳐가며 "이겨라 이겨라"를 목이 터지도록 외치고 있는 모습들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싸움닭은 처절할 정도로 싸움을 하였다. 둘러선 구경꾼들의 눈에도 힘이 들어 있었다. 사람들도 전쟁통이라 그런지, 싸움닭을 닮았는지 으르렁대며 장마당에서 싸우기가 일수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싸움닭이 있든지 무슨 싸움이 있든지 구경을 할 만한 일들이 하나씩은 꼭 있었다.

오늘 날까지 명맥을 유지해 오는 무협지나 갱 영화는 모두 싸움닭에 관한 이야기이다. 싸움 잘 하는 관우와 장비 이야기로 꾸며진 삼국지의 내용이라든지 농구나 야구 모두가 백인들은 구경꾼들이고 흑인들은 싸움닭이 되어 피투성이가 되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한다. 운동경기에 대한 열기도 구경심리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야구 관중 1억 명 돌파'와 응원을 보려고 밤 새워 줄을 서 있는 모습도 이채롭다.

싸움닭도 있지만 반계(班鷄)라는 닭도 있다. 이 닭은 뒤엄 밭이나 후벼대고 파헤치면서 지렁이나 다른 먹이를 찾는 닭과는 질(質) 자체가 다른 닭이다.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가 있다가 솔개나 독수리가 동족(同族)을 급습이라도 할 것 같으면 내려와서 침입자를 쫓아내는 역할을 한다. 먹이도 그렇다. 다른 닭들이 배불리 먹고 남아야 그제서야 반계는 먹기 때문에 주인은 따로 반계를 불러 모이를 주곤 하였다. 비록 미물의 날짐승이지만 이 얼마나 고고한 닭인가? 선거가 끝나고 우리 모두 반계처럼 되기를 바랄뿐이다.

우리나라 양반 사상은 선비사상인데 영어로 '엘리트(Elite) 사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반계는 우리의 선비스러움을 닮은 것이 아닐까? 요즈음은 네가 먹는 것보다 내가 먼저 먹어야하는 철학이 지배적이지만 사실 우리 민족은 고고한 민족이었다. 절대 남의 나라를 침입하지 않았으며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빼앗아 먹는 민족은 아닌 것이다. 우리들이 반계만도 못해서야 될 말인가? 이 반계는 조무래기들처럼 네가 잘 했느니 내가 잘 했느니 하는 아웅다웅이 없다. 우리는 내 이익보다 네 이익을 먼저 생각했고 이웃의 피해를 먼저 염려한 것이다. 개인의 영리보다 국가의 큰 정신을 중요시하는 민족정신을 가지고 있다. 다 손해인 줄 알면서 그것을 계속 한다면 반계는 그만두더라도 싸움닭 수준에도 못 미치는 민족이 아니겠는가?

나는 일본인과 접촉사고를 낸 한 한국청년을 안다. 마침 일본 대사관에 근무하는 직원의 차였다. 그 일본인은 먼저 나와서 다친 데가 없는가를 묻고 얼마나 놀랐는가,(?) 당신이 잘못을 했지만은 내차는 내가 고치고 당신 차는 당신이 고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하고 내가 잘하는 정비소가 있는데 값도 싸고 정직하게 잘 해주니 함께 거기 가서 차를 고치자는 제안을 해 오는 모습을 보았다.

파라과이에서 선교를 할 때였다. 언덕받이를 올라가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불쑥 나와 내 차의 뒷바퀴를 받았다. 차를 옆에 세우고 보니 오스트리아 노인이었다. 토요일이라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노인은 정중하게 사과하면서 당신이 아는 정비공장이 있으면 가서 견적을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백배 사죄를 하면서, 차를 고쳐주고 혹시 더 들어가면 이리로 연락을 하라며 명함을 한 장 건네주었다. 이 얼마나 반계사상을 가진 노인인가.신약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 사마리아인의 사상을 닮은 사람이었다. 한국 반계만 있는 줄 알았더니 오스트리아 반계도 있음을 알았다.

그 노인과 인연이 되어 무슨 일이 있을 때 차도 같이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그 노인은 말하기를 나도 여기가 외국이요 목사님도 외국인데 우리 서로 위로하면서 살자는 것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예수님은 30년을 준비하여 3년을 일했다. 12명의 제자들에게 강한 훈련을 한다고 했지만 12분의 1은 반역자가 나온 것이다.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반대하는 자요'라고 한 것은 사탄과의 전쟁 중에서 방관하는 구경꾼 예수쟁이들인 것이다.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다. 내 이익보다 더 큰 것을 선택하여야 한다. 사소한 감정을 버리는 것은 '반계사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 자식도 귀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식도 귀한 것을 알아야 한다. 내 말도 중요하지만은 다른 사람의 말도 대단한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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