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삶 속으로

복음의 삶 속으로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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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01일(화) 11:52

경찰서 정보과에서 근무 하다가 퇴직하신 분이 등록을 하였다. 이 분은 중풍과 당뇨에다 다리를 절단하라는 의사의 결정이 내려진 상태였다. 이 일로 고민 하던 중 좋은 약을 소개 받고 이 약을 복용 하면서부터 점점 차도가 있어서 지금은 반신불수에서 완전히 해방되었고 팔 다리도 정상적으로 되었으며 운전까지 하고 다니시는 82세의 할아버지이다. 

왈(曰) '나는 이 약의 전도사'라고 까지 말을 하고 다닐 정도가 되면 그 약에 대한 신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이 약인데 어찌 내가 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그의 답변이었다. "그 약을 빼고 신구약과 예수만 넣으면 될 것 같습니다. 영감님" 이 할아버지의 방식대로 목회를 하면 교회 부흥은 순식간에 그 복음의 열매를 맺을 것 같아 아쉬운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몇 일전 남해 삼천포 지나 남해대교 쪽으로 진행하다가 보니 대추야자를 가로수로 심어놓은 곳에 나무마다 한 다발의 꽃이 피어 있었다. 이 열매는 기생 라합이 살던 성에서 보니 꽃 한 송이의 열매가 우리 말(斗)로 '서 말 정도의 분량'이라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꽃을 피워야 열매가 나오고 꽃을 피울만한 토양조건이 있어야 되는데 급한 맘으로 꽃 없이 열매만 따오라고 자꾸 외쳐 대니 성도들도 죽을 맛 일 것이다. 아직도 영적건강은 애기 상태인데 1백m를 어른의 손을 잡고 질질질 끌려가면서 뛰는 모습이 연상이 된다.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우리들의 문제점은 신앙과 삶의 불일치이다. 구원은 피의 문제이다. 창세기 3장의 타락 이후로 죄로부터 건져내는 방법은 제사라는 통로를 통하였다. 송아지 피와, 양의 피, 그리고 짐승들의 희생은 모두 다 죄와 연관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때 블레셋이나 바벨론은 하나의 초달 도구가 된 것이다. 신약에 들어와서도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도 결국은 피의 문제이다. 십자가 없는 부활과 영광은 없음도 잘 안다(No Cross No crown).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 나를 인도해 주시는 주님인 것은 신자라면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님을 삶의 보스로 모시고 있다. 기도라는 통로를 통하여서 구하기도 하고 자랑도 한다. 잘 되면 더욱 잘 모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모시기만 하는 데 있다. 주님처럼 삶을 살아야 함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 것이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크리스찬의 문제라고 본다. 신앙의 패턴을 바꾸어 나가야만 진정한 크리스찬 국가로 발돋음 할 수 있고 천국 시민으로 살 수 있다. 지금은 잘되면 축복으로 간단히 해석을 하고 주님의 뜻이 임(臨)했다고 하면서 감사만 드리면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심을 확실히 믿는다면 소유에 대한 엄청난 집착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무소유 삶은 전 국민을 감동시킨 것들은 무엇을 말 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우리들은 피차가 초대교회처럼 나누는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면 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난 것이 될 것이다. 우리들은 왜 이다지도 잘 살고 있는가? 고(故) 마더 테레사와 고(故) 한경직 목사님의 삶이 그리워만 진다. 예수의 삶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라고 본다. 우리 다 함께 복음의 삶 속으로 들어가자.

김춘근/목사 ㆍ 포도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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