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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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26일(수) 15:40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예배이다. 하나님은 일 열심히 하는 일꾼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요4:23)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이다. 사역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웃과 세상을 섬기는 것이라면 예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중 최우선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면 예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도 인간을 통하여 예배를 받으시기 위함이며 안식을 주시면서 이날에 모든 일을 멈추고 쉬라한 이유도 온전한 예배를 받으시기 위함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중요한 이유도 예배자로 세우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경배한 예배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있을 수 없다. 예배가 없는 구제나 헌신은 별의미가 없다. 예배가 은혜스럽게 잘 되면 모든 것이 잘 될 수 있다.

내가 드린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가를 늘 생각해야 한다. 형식적인 예배인지 아니면 정성으로 드려진 예배인지, 의식적인 예배인지 아니면 믿음으로 드려진 예배인지 생각하며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루는 집에서 공부한 아이가 자기 방에서 울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공부가 잘되지 않아 속상해서 운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공부가 잘 안 된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계속된다면 심각한 일이 될 것이다.

크리스찬에게 있어서 예배가 잘 안 된다는 것은 위의 학생의 고민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예배가 잘 안드려질 때 속상해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울어야 할 정도가 아니라 통곡을 해야 할 것이다. 금식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에 대한 중요성과 심각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데 고민이 있다. 예배에 대한 기대감도 없이 매 예배에 임하고 있다는데 심각한 고민이 있다.

에덴동산의 타락은 선악과가 아니라 예배를 타락시키는 데 있었다. 예배를 잃어버린 데 있었다. 아담이 하나님을 만날 때 그렇게 기쁘고 평안한 마음이 없어지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부담스러움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예배를 잃어버린 마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세상을 좋아하게 된다. 세상 것을 탐하게 된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는 말과 같이 크리스찬이 예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크리스찬을 지킨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예배는 필요 선택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것이다.

예배란 헬라어로 '프로스 쿠네오'라 한다. 그 뜻은 입을 맞춘다(kiss)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옛날에 신하들이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왕의 손에 입을 맞추고 왕의 발등상에 입을 맞출 때 쓰는 용어이다. 예배는 그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존경하며 찬양하며 높여드리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배는 은혜를 받는다는 것보다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12장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있다. 마르다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일에 분주하였고 정신없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을 다했다. 값비싼 향유를 부어 드리며 수건 대신에 여자의 최고의 자존심인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다는 것이다. 그때 집안에는 음식 냄새가 아닌 향유냄새로 가득했었다. 이 장면을 신학자이면서 목회를 한 영국의 짐그래함이 그의 책 '잠자는 거인을 깨우다'에서 성경에서 보여주는 가장 이상적인 예배의 모델이라 말하고 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땅에서 드린 것이지만 하늘 보좌까지 오르게 되며 우리의 삶은 평강과 기쁨은 물론이요 심령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목회자라면 모두가 그렇겠지만 필자는 예배에 신명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설교자이기 전에 예배자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회중석에 앉아서 예배하다가 설교 시간이 되면 강단에 오른다. 예배는 곧 심장이다. 사람이 심장이 멈추면 바로 죽는 것 같이 예배가 멈추면 교회는 죽는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한다. 순교자적인 자세로 드렸고 순수한 예배를 지키려 했던 한국교회의 예배가 어느 순간에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한다. 예전은 있는데 예배가 없다 한다.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그 어떤 사역보다 예배의 본질에 충실하며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 학교의 구호가 있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가정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목사인 나는 이렇게 외쳐본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고 말이다.

김유수/목사 ㆍ 월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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