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목사님을 그리며

할아버지 목사님을 그리며

[ 기고 ] 故 추양 한경직목사 10주기를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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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21일(수) 17:31

나는 영락교회 기도원에서 7년간 사역을 했었다. 그때 한경직목사님께서 사용하셨던 목사관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특별한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다. 그곳에서 사역할 때 한 목사님께서 비교적 자주 오셨다. 한 목사님이 쓰시던 방에 들어가셔서 기도하시면 나는 그 문 앞에서 목사님이 기도하시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연세가 너무 높으시니까 혹시라도 기도하시다가 무슨 일이 있지나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기도하는 방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마치 엘리 제사장을 모셨던 어린 사무엘이 된 것 같은 그런 행복한 착각에 빠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한 목사님가 갑자기 기도원에 다녀가시는 것이 그저 반갑고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연세가 너무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혹시 목사님이 그 때를 아시고 평생 설교준비하시고 기도하시던 자리를 다녀가시기를 원하셨나"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 목사님은 늘 돌아가시면서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오, 아마 이제 마지막일 게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한 목사님이 사람들을 바라보시던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늘 많은 사람들 속에 계셨지만, 그분은 거기 있는 사람 전체를 한눈에 보신 적이 없다. 항상 한 사람 한 사람과 눈빛을 맞추시며 주목하여 보셨다. 그분과 눈이 마주치면 언제나 나를 향한 따듯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당시 나는 매일 영락기도원에서 오전에는 집회하고 오후에는 찾아온 교인들을 상담하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역을 했다.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고, 기도 받기를 원하셨다. 특별히 병원에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고 사형선고를 받은 분들이 오셔서 기도해달라고 했고,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만일 내가 손을 얹고 기도할 때 초월적인 역사들이 나타났다면 정말 신이 나서 이 사역을 했을 것이다. 교인들도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난 방언도 못하는, 능력하고는 거리가 아주 먼 목사였다.

방언도 못하는 사람이 기도원 목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사역을 하는 것이 굉장한 부담이었다. 그래서 새벽마다 특별한 권능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사모하고 기도하던 역사는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한 목사님을 자주 또 가까이 대하면서 그분의 힘이 어디서 왔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교인들은 그분과 눈이 마주치면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모든 사람들은 그분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분의 말에 순종했다.

그 힘이 어디서 왔을까?
1999년 새해가 시작하는 때였다. 한 목사님이 연세가 너무 높으시고 건강도 좋지 못하셨기 때문에 교인들이 새해라고 찾아뵙고 세배드리는 것도 목사님께는 큰 부담일 정도였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개별적으로 세배드리러 가지 못하게 하고, 교회 대표로 봉사부원들과 지도 목사가 올라가서 세배를 드리고 오라고 했다.

간단하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한 목사님께 세배를 드렸다. 한 목사님께서 절을 받으시고는 손가락으로 무릎을 가리키면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이미 기력이 너무 쇠하셨고, 또 호흡이 일정치 않아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못 알아들으니 곁에서 모시던 장로께서 설명을 해 주셨는데 "이 목사님께서 절을 하시는데, 제가 무릎이 아파서 같이 절을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셨다고 한다.

이 말씀을 들으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한 목사님은 98세이셨고, 교회 원로목사였다. 교회에서 가장 어린 38세 부목사에게 98세이신 원로목사님께서 게다가 그 병약한 몸으로 이런 말씀을 하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일은 한 목사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사건이 되었다. 

그날 남한산성에서 내려오면서 풀지 못한 숙제를 풀었다. 그분의 권능은 '낮아짐'과 '섬김'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주문같이 드리던 나의 새벽기도가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능력 없어도 좋사오니,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를 드린 이후에 하나님은 나를 교회로, 지금은 호주 시드니의 이민목회지로 인도하셨다.
얼마 전 중국 선교지에 사역이 있어 다녀오다가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고국에서 딱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이 시간을 한경직목사님께서 사시던 남한산성에서 보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목사님을 만났던 곳, 그곳에서 한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이 들려주셨던 그 음성을 다시 들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한 목사님 사택에는 '한경직 우거처'라는 초라한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 앞에 한참동안 머물러 있었다. "무릎이 아파 같이 절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그분의 말씀을 떠올리며….

이춘복/목사ㆍ호주 새벽종소리 명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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