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代打) 목회

대타(代打) 목회

[ 목양칼럼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3월 30일(화) 18:26

필자가 내당교회에 부임하여 목회한 지도 어언 20년이 훌쩍 넘어섰다. 그 동안 필자는 '대타목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마음에 담고 목회해 왔다. '대타목회'라는 단어가 나오기까지 배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1987년 5월 당시 서울 남노회에서 39세로 뒤늦게 목사안수를 받고 동년 9월 부산 모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개척 4년째로, 1백30~1백50여 명이 출석하며 거기에다 교회 건축 부지까지 마련된 교회에 2대 목사로 부임하였으니 금방 안수 받은 필자에게는 과분한 교회였다. 그 교회에서 2년 넘게 목회하면서 교회 건축문제로 주민들과의 갈등, 교회 내의 의견 불일치 등으로 더 이상 목회가 힘들어서 하나님께 한 달간 작정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내용은, "하나님 아버지, 이 젊은 종이 예배당 건축문제로 목회가 어려워 한 달 동안 두 가지 기도제목을 걸고 기도할텐데 한 가지를 선택해서 응답해 주옵소서. 첫째, 이 교회를 건축하고 목회하기를 원하신다면 기도기간 동안 주민들 반대를 무릅쓰고 포크레인으로 흙 한 차(車)만 퍼내게 해 주신다면 목숨 걸고 교회 짓고 목회하겠습니다. 둘째, 교회 건축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어렵다면 예배당을 잘 지어놓은 곳으로 임지를 옮겨주셔서 목회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 였다.

당시 내당교회는 전임 목사가 힘겹게 건축을 마친 후 서울로 임지를 옮긴 상태였고, 갚기 어려울 정도의 건축부채로 시달리고 있었다. 새롭게 담임 목사를 청빙하려고 하던중 니 오시겠다는 분은 모시기 싫고 모시고 싶은 분은 부채 때문에 오시지 않으려고 해서 점점 시일은 늦어지고 교인들 간의 마음은 흩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후임 목사 청빙을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하나님께서 자격미달자인 필자를 '대타목회자'로 보내시게 되었다. 자격미달자라 함은 당시 기독공보 청빙공고를 내면서 자격조건을 '40대 후반, 담임목사 경력 5년 이상'이라했는데, 필자는 당시 41세, 목사 안수 받은 지 2년 7개월 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청빙위원들과의 첫 만남에서 "장로님들께서 만나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기독공보를 보았는데 청빙조건에 한 가지도 맞지 않는 목사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했더니, 선임 장로가 "그 조건은 저희들이 내세운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사님을 보내실지 알 수 없습니다"라고 해 "그건 그렇습니다"하고 헤어졌다.

당시 내당교회에는 절친한 관계에 있는 후배가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었는데 교회를 한 번 돌아보고 가라 하기에 두 손 흔들며 "L 목사, 속담에 '올라가지도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면서 대예배실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그냥 돌아갔다.

이런 교회에 89년 12월 12일 부임하게 되었으니 꿈만 같아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저는 모든 조건에 맞지 않는 사람인데 왜 보내셨습니까?" '대타목회', 이 네 글자가 마음에 새겨졌다. 그렇다. 담임목사 청빙은 이런 저런 일로 늦어지고 교인들의 마음은 흩어져가고 그래서 우선 대타목회자를 세워야겠다고 보내신 것 같았다.

'대타'란 말은 야구 시합에서 주전선수 중 문제가 생길 때 대신 기용하는 선수 즉, 1회용 선수를 일컫는 용어이다. 이 대타선수는 한 번 기용해보고 계속 잘 치면 계속 기용되는 것이고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다시는 기용하지 않는 것이다.

내당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교회가 어려울 때 교회 건축 못하고 예배당 잘 지어 놓은 교회로 임지를 옮겨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자격미달 목사를, 내당교회에 보내시어 대타목회를 하게 하셨기에 너무 감사해서 '대타목회'를 늘 마음에 담고 계속 쓰임 받기 위해 부족한 면을 늘 채워 달라고 기도하면서 목회하다 보니 20년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목회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대타목회자 심정으로 하루하루 성실하게 목회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계속 기용해 주셔서 은퇴까지 보람 있고 기대감 넘치는 목회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조석원/목사 ㆍ 내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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