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험해도 우린 가리, '사모'의 길을

멀고 험해도 우린 가리, '사모'의 길을

[ 아름다운세상 ] 가족 잃은 슬픔 신앙으로 승화 '목회자유가족협의회'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09년 11월 25일(수) 17:18
   
▲ 목회자유가족협의회 임원들이 낙엽 떨어진 길을 걷고 있다.

'목회자 부인',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목회자 못지않게 그 옆에서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살아온 목회자 부인에게 존경을 담아 붙이는 경어(敬語)다. 그러나 일평생 교회만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헌신하고 충성하던 이들에게 남편의 죽음이라는 청천벽력(靑天霹靂)이 닥치면 이들은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자신이 섬기던 교회밖에 모르고 살던 목회자 부인들은 새로운 목회자를 위해 교회의 사택을 비워주고 떠나야만 하고, 극심한 생활고로 인해 생전 해본적 없는 험한 일까지 해야만 한다. 교회나 사회에 아쉬운 소리를 하자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남편의 헌신을 헛되이 하는 것 같아 할 수 없고, 슬픔과 고통의 신음소리를 밖으로 내자니 목회자의 아내으로서 믿음으로 서는 모습을 보여야 된다는 생각에 안으로만 안으로만 그 아픔을 견뎌왔다. 이런 목회자 유가족들은 국가 지원 혜택이나 교단의 체계적인 지원도 받지 못해 도움의 사각지대에서 홀로 아픔을 삭여왔다.
 
그러나 지난해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아픔을 감당해오던 목회자 유가족들이 아픔을 함께 나누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협의체를 조직해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목회자와 사별한 부인들로 구성된 협의체인 목회자유가족협의회(회장:이영규)가 조직된 것. 지난해 2월 18일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의 한 간병인협회 사무실에서 조직된 목회자유가족협의회는 △유가족 상담 △후원자 연결 △유가족 자녀 교육비 및 장학금 연결 △취업을 위한 교육 시스템 연결 △추석 및 성탄절 선물 지원 △회보 발간 △투병중인 유가족 치료비 연결 △거주지(쉼터) 확보를 위한 행사(간증집 등 출간) △수련회를 통한 유가족 위로 등의 활동을 펼치며 가장을 잃은 슬픔에 정체성 혼란과 경제적 고통까지 삼중고에 시달리는 목회자 유가족들을 돕고 있다.
 
하지만 목회자유가족협의회는 어려운 경제 여건 등으로 인해 올해 2월에야 처음으로 총회를 갖고 조직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재정이나 조직이 미약하기 그지 없다. 현재 1백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목회자유가족협의회는 지난해 총회 사회봉사부 산하 단체로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 교계의 관심을 받지 못해 후원자들이 많지 않은 상황.
 
자신의 간병인협회 사무실에서 목회자유가족협의회를 개원을 할 정도로 최일선에서 사역에 이끌고 있는 이영규회장은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목회자 유가족들을 위해 무엇보다 교단 산하 교회들이 큰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 목사님들은 살아 생전 가족들보다도 교회를 생각하며 모든 것을 교회를 위해 투자한 경우가 많아요. 가족을 위해서는 아무 대책도 없이 가입했던 연금도 깨서 교회 건축하는 데 쏟고, 그래도 돈이 모자라면 사례비도 고스란히 목회비에 들어가지요. 이런 삶을 살아온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면, 부인과 가족들은 그야말로 빈털털이로 거리 한복판으로 나앉게 되는거죠. 본교단 소속 목회자라면 누구에게나 이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목회자들이 목회자 유가족들을 후원하는 일을 나의 일로 여겨야 합니다."
 
그동안 목회자 유가족들에게 적절한 지원과 관심을 보이지 못한 본교단에서도 최근 목회자 유가족들이 도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인식하고 사회봉사부를 중심으로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회봉사부 총무 이승열목사는 "목회자 유가족들은 총회 혹은 노회 조직과 개교회, 일반 사회복지 등 그 어떤 전달체계에서도 그들의 남은 가족들의 생계와 생존을 위한 도움의 손길과 뒷받침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가장 소외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고 만다"며 "교회들이 유가족들에게 더욱 깊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따뜻한 눈길과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국교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목회자유가족협의회도 최근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목회자 유가족들의 애환과 도움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다. 특히 지난 9월에는 간증집 '홀로 하늘을 바라보며'를 출간, 많은 이들에게 목회자 유가족들의 아픔과 이를 신앙으로 승화시키는 모습들을 소개하면서 교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첫번째 열매로 지난달 11일 수원성교회(안광수목사 시무)가 이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성도들이 모금한 1천5백만원을 전달하며 전국교회 관심의 포문을 열었다. 수원성교회의 후원은 본교단 산하 교회들이 자신의 친 가족과도 같은 목회자 유가족들을 외면하지만은 않는다는 위로와 자신감을 이들에게 심어주었다.
 
이 기금을 씨돈으로 목회자 유가족 거주지와 노령 및 독거 홀사모를 위한 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목회자유가족협의회 임원들은 "사별과 함께 홀사모들은 교회와 사회에서 소외되면서 사모와 사회인의 경계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만 사회적 안정을 찾고 영적 위로를 받으면 다시 사명을 회복하면서 삶의 자리를 찾아나가게 된다"며 "하루 속히 이들이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다시 사명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전국교회의 관심과 지원, 교단의 체계적 정책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 이영규회장과 이영순총무에게 기금을 전달하는 안광수목사. (왼쪽 첫번째는 사회봉사부 이승열총무)

 

#  수원성교회, 사랑의 헌금 전달

"많은 목사님들이 과로와 스트레스로 어려움을 겪고 심지어는 세상을 떠나시기도 합니다. 사회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다 세상을 떠나는 것은 순직인데 교단적으로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오늘의 이 기금전달이 도화선이 되어 본교단 산하 교회들이 목회자 유가족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지난 11일 오전 수원성교회 담임 안광수목사는 목회자유가족협의회의 이영규회장과 이영순총무에게 후원 기금 1천5백만 원을 전달하며 위로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전달한 기금은 수원성교회에서 한달에 한번 이웃 돕기를 위해 수입의 1%를 헌금하는 '사랑의 헌금'으로 마련된 것.
 
기금을 전달받은 이영규회장은 "많은 목회자 유가족들이 남편을 잃고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한다는 하는 걱정 때문에 교회에 생활대책을 요구하지 못하고 무대책으로 나와 간병인, 파출부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며 "이번 수원성교회의 지원은 우리가 교회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저희에게 자신감을 주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목회자유가족협의회는 이 기금을 합해 목회자 유가족이 쉴 수 있는 쉼터를 구할 계획이다. 남편을 잃고 동시에 '사모'라는 사명을 잃은 목회자 부인들이 새롭게 사명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은 것이 임원진들의 생각.
 
이 자리에서 안 목사는 "목회자 유가족들이 스스로 도와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실정에서 영향력있고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는 분들을 목회자유가족회 이사장과 이사로 세우고 그분들이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하며 "후원이사회 조직을 통해 한국교회가 평생을 바쳐 희생하다가 돌아가신 목회자의 유가족을 나의 가족처럼 돌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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