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가 구원론 포기한 종교다원주의라고?

WCC가 구원론 포기한 종교다원주의라고?

[ 기고 ] WCC 총회 유치 반대론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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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06일(금) 10:05

허호익교수/  대전신대ㆍ조직신학


최근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제10차(2013년) 총회 한국 유치 결정 이후 한국교회 안에서 WCC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예장 고려측 제59회 총회는 WCC 총회 유치 반대성명을 통해 "WCC는 기독교 이름을 가장하고, 공존, 평화, 환경, 인권, 하나됨(일치) 등의 모토를 사용하여 정통 기독교를 저해하는 이른 바 반(反)성경, 반(反)기독, 반(反)교회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WCC의 문제점으로 종교다원주의, 인본주의 성경관, 세속적 구원론, 종교 혼합주의, 선교 무용론, 기독교 이름의 정치 단체 등을 꼽았다.

예장 합동 소속의 모 목사는 "WCC가 성령의 감동으로 된 무오한 성경을 지키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론도 사실상 포기한 지 오래됐다"고 지적했다. "종교 다원주의와 혼합주의, 자유주의 신학, 선교 무용론, 그릇된 성령론 등 신학적인 문제를 너무 많이 안고 있기 때문에 WCC 10차 한국 총회를 유치를 반대한다"고 하였다.(기독신문 10월 13일자)

한국교회는 이미 WCC의 용공성 시비로 교단 분열의 진통을 겪은 바 있다. 물론 그 당시 WCC에는 동구라파 공산권 국가의 교회대표들이 참가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용공성을 띈 WCC 가입과 탈퇴가 문제가 되어 WCC를 지지하는 통합측과 반대하는 합동측으로 분열된 것이다. 그러나 WCC를 용공단체로 보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흑백논리이다. 이런 논리를 적용하면 UN이야 말로 세계최대의 용공단체가 되고 만다. UN에는 북한과 중국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 공산권 국가들이 가입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WCC에 대한 왜곡과 비판 역시 WCC의 헌장을 잘 모르거나 잘못된 선입관에서 비롯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1948년 암스테르담(Amstertam)에서 창립한 WCC는 헌장을 통해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의 협력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세계의 다양한 교회들의 일치를 위한 공통분모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하고, 성경에 의해 선포되었고 사도적 공동체에 의해 설교된 구원과 인류의 종국적 운명에 대한 신앙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을 사는 신앙"을 제시하였다.

그 후 여러 논의를 거쳐 1961년 뉴델리 총회에서 개정한 헌장을 통해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는 성경이 증거 하는 바대로 주 예수께서 하나님과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며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 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협력체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이 헌장에 비추어 볼 때 위에서 언급한 WCC 총회 유치 반대 논리가 심히 왜곡되어 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첫째로 WCC 헌장은 종교개혁의 전통에 따라서 성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WCC 헌장의 첫 문장이 '성서가 증거하는 바대로 주 예수께서 하나님과 구세주이심을 고백한다'고 밝혔다. 무슨 근거로 WCC가 반성경적이라고 비판하는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둘째로 WCC 헌장은 "주 예수께서 하나님이며 구세주이심"을 명시적으로 고백하였다. 따라서 예수의 신성과 구원의 주 되심을 밝힌 WCC가 "반(反)기독적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론도 사실상 포기한 것'이며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라는 비판 역시 근거 없는 왜곡과 편견임이 드러난다.

셋째로 WCC가 선교무용론을 주장한다고 비판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WCC 헌장에는 세계선교를 위해 "성부 성자 성령 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WCC의 핵심적인 신학적 주장이기 때문이다.

넷째로 WCC의 '그릇된 성령론'을 비판하였지만 그렇지 않다. WCC 창립 헌장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을 사는 신앙"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공존, 평화, 환경, 인권, 일치 운동을 하면 정통기독교를 저해하는 반(反)성경, 반(反)기독, 반(反)교회 운동이 되는 지 묻고 싶다. 공존 대신 공멸, 평화 대신 전쟁, 반환경, 반인권, 분열 운동을 하여야 정통기독교가 된다는 말인가? 이런 주장이 과연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이고 교회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WCC 헌장은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한 배경을 가진 무수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모여 세계기독교교회가 지향하여야 할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의 공통분모'로 제시한 것이다. 정통적인 기독교가 고백해 온 사도신경의 핵심 내용을 다 포함했을 뿐 아니라, 사도신경에 빠진 '성경의 증거'까지 포함하였기 때문이다. WCC에 속한 교회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 일부 지나친 주장을 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WCC 자체를 매도하는 것은 공산국가가 가입해 있다고 해서 유엔을 용공단체로 보는 것처럼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 아닐 수 없다.

WCC 선교와전도위원회 총무 금주섭 목사는 "WCC 총회 유치는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 교회사적 요청이자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세계 기독교의 발전을 위해 사용하시고자 하시는 섭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어렵게 성사시킨 WCC 총회 유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이며, 세계의 모든 교회 앞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가뜩이나 한국교회의 대외적 공신력이 약화되고 안티기독교 세력이 한국교회 공격의 빌미를 찾고 있는 상황에서 WCC 유치 반대를 통해 한국교회의 내분을 드러내고 세계교회의 걱정거리를 만든다면 과연 누가 이를 기뻐할른지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교회의 분열을 통회하며 교단통합을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이 때에, WCC 총회 유치를 통해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한 축제의 장을 마련하여야 할 터인데 꼭 이렇게 분열의 장으로 몰아가야 하는지 정말 묻고 싶다.

평소에 WCC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던 문제점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이를 지적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여 한국 총회를 통해 WCC를 바로 세우는 건설적이 계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 보다 신앙적인 자세가 아닐까? WCC 총회 유치 반대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를 사모하는 심정과 열린 마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나와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는 생각을 접는다면, 이 땅의 모든 교회가 WCC 헌장이 명시한 '일치의 공통분모' 안에서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화해와 협력과 일치를 모색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분열은 배교보다 더 나쁘다'는 키프리안의 경고를 마음에 새겨 이 땅에서 교회 분열의 아픈 역사를 다시 반복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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