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청지기로서 세상을 보존하라'

(37)'청지기로서 세상을 보존하라'

[ 칼빈탄생5백주년 특집 ] 칼빈의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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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05일(목) 10:08
이오갑 / 그리스도신학대학교 교수

칼빈은 창조된 세계를 어떻게 보았는가?
칼빈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름답고 완전하게 창조했다고 한다. 더 나가서 칼빈은 하나님께서 그 궁전같이 아름다운 곳에 아주 다양하고 특징있으며, 서로 조화와 질서를 이루며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과 무생물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하늘과 땅을 무로부터 창조하셨고,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모든 종류들의 동물들과 영혼 없는 피조물들을 만들어내셨으며 놀랄만한 질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의 무한한 다양성을 이루어내셨다. 그 분은 각 종류들에게 각자의 본성을 갖게 하셨고 그것들에게 직무를 부여하셨으며 그것들의 위치와 처소를 정해주셨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썩게끔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섭리를 통해서 질서를 갖춰주셨고 그것들이 마지막 날까지 존속되도록 해주셨다." 그래서 이 세상은 가장 완전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곳이 되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들에는 그 균형과 조화에 있어서 하나도 덧붙일 것이 지극히 완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도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러나…, 칼빈에게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나머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는 보이지 않으므로 세상의 '형상'으로 마치 옷을 입은 것처럼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셨고, 그 형상 가운데서 가시적이 되셨다."

흔히 인간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칼빈은 세상까지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본다는 점이 놀랍다. 같은 이유에서 세상은 또한 하나님의 '아름답고 진귀한 옷'이나, 거기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학교', 그리고 하나님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와 같이 세상은 가장 아름답고 완전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주기에 부족함 없는 형태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칼빈은 세상이 아무리 아름답고 완전해도 역시 피조물일 뿐이라고 한다. 세상은 세상인 이상,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비견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가리거나 대신할 수는 없다. 칼빈에게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거리, 질적 차이가 전제되어 있고 항상 강조된다. 그래서 신적인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려질 뿐 창조된 세계나 세계 내의 어떤 것에 돌려질 수 없다. 바로 거기에 칼빈의 창조론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 전체, 그리고 예배와 경건의 핵심이 있다.

칼빈 창조론의 인간우월주의
그렇다면 인간의 창조는 어떤가? 칼빈은 인간의 창조를 창조사건의 최종점이자 완성점이라고 보았다. 하나님은 엿새에 이르는 동안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뒤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물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탁월하게 창조하셨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인간은 다른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와 선의 탁월한 표본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인간을 정당하게 소우주라고 불렀다."

그렇게 창조된 인간은 모든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주로서, 지배자로서 세워졌다. 물론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로서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창세기 1:26~28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른 것이었다. 칼빈은 강단에서 선포했다. "인간은 몸은 작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주'와 '통치자'로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든 짐승들, 가축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그것들은 인간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꼭 동물들만은 아니었다. 이 세상의 땅도 인간을 위한 것이었으며 심지어는 하늘의 태양과 달, 별들마저도 모두 인간을 위한 것, 인간의 쓰임새를 위하여 창조된 것으로서 인간에게 맡겨졌다는 것이 칼빈의 생각이었다. "온 세상은 아담의 발아래 놓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하늘이 자신의 유업을 위해서 창조되었으며 땅이 자신에게 맡겨졌으며 그리고 모든 것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칼빈의 그런 인간우월적 사상은 자연과 우주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서는 위험한 사상으로서 바로 그것 때문에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차별적인 개발과 남획이 이루어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인간우월주의의 진정한 목적
그러나 칼빈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보면 그의 창조론이 단순히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주의라고 하기 어려운 점들이 발견된다. 칼빈은 그런 사상을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지배나 개발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칼빈은 그와는 다른, 혹은 정 반대의 이유로써 주장했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그 분께 감사하며 그 분만을 더욱 의지하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모든 것들은 인간이 사용하도록 정해졌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더 의무적으로 그 분을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모든 것을 바치게 하기 위해서였다." "모세는 인간이 이 땅의 지배자이고 주인이라는 것을 인간이 언제나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조건과 함께 가르친다." 즉 인간우월주의나 자연지배권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에게 그런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알고 그 분께 더욱 감사하며 그 분과의 올바른 관계를 세워나가기 위해서였다.

둘째로, 칼빈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책임이라는 윤리적인 혹은 실천적인 이유로써 그런 주장을 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올바른 사용과 보존이라는 책임이다. "모세는 이제 인간이 땅을 경작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땅이 인간에게 주어졌다고 덧붙인다. 그래서 인간들은 게으르고 태만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노력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이 노동은 매우 기쁘고 즐거운 것이었으며, 지겨움이나 노여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하지 않고, 인생을 먹고 마시고 자는 일에 허비하는 것 보다 더 자연질서를 거스르는 일은 없다.

우리는 검소하고 간소하게 사용하며 남는 것들은 간직한다는 조건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손에 맡기신 것을 소유한다. 우리들 가운데 그런 절약이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즐거움을 누리라고 주신 재화들을 보존하는 데 있어 근면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각자는 그가 소유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에게는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일도 없고 하나님이 지키고 보존하기를 원하는 것을 남용으로써 더럽히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볼 때, 인간이 자연에 대한 지배권과 사용권을 가졌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자연을 근면하고 성실하게 잘 '보존'하고 '양육'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자연물에 대한 남용을 금지하고 탐욕을 경계하며, 항상 절제와 검소함을 강조했다. 그것은 모두 인간이 자연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해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남용하거나 오용하거나 허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칼빈은 창조론에 대해…'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운 공존'

오늘날 칼빈의 창조론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칼빈은 현대인들에게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세운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무신론적인 현대인들은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자연을 하나님과 분리시킨다. 그들은 자연을 신과 분리시키면서 자연을 하나의 물적 대상으로만 여긴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연을 마음대로 오염시키고 남획한다. 그러나 자연을 통해 있는 그리고 자연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사랑을 생각할 때는 자연과 그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감사한 존재가 된다. 하나님 안에서 자연을 그렇게 인식할 때, 인류는 자연을 진정한 형제애로서 대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칼빈의 창조론은 그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음으로 항상 남용이나 탐욕을 경계하고 절제와 검소함을 강조했던 칼빈은 오늘날 지나친 풍요를 구가하는 소비사회에 대한 대안이 된다. 자연에 대한 수탈, 환경파괴는 인간의 소비욕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끊임없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재화, 더 많은 생산물이 필요하다. 그것은 곧 자연에 대한 끝없는 개발과 착취로 이어진다.

현재의 생태학적 위기 속에서 인류와 모든 자연 생물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욕망을 다 충족시키려고 해서는 안된다. 자연은 한정되어 있고, 많은 것들이 고갈되고 멸종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서, 인간의 욕망 자체를 줄여야 한다. 더 절약하고 더 검소하고 더 청빈한 삶을 통해서 인류는 자연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주적 평화, 우주적 구원의 길을 예비해야 할 것이다. 칼빈의 창조론은 바로 그런 점에서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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