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그 중심엔 하나님이 계시다"

"예배, 그 중심엔 하나님이 계시다"

[ 칼빈탄생5백주년 특집 ] (33)칼빈의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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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22일(화) 10:37

예배는 교회의 존재가치
예배는 교회의 존재가치이다. 예배는 교회의 숨결이며 생명이다. 교회는 예배로 말한다. 그러므로 예배가 제대로 드려지지 않으면 신앙인과 교회는 그 존재를 정당화할 수 없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칼빈은 "교회는 말씀이 바로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곳"이라고 예배를 기준으로 하여 교회의 정의를 내렸다. 흔히 말하는 '정통'(Orthodox)이란 말도 '바른'(Ortho) '생각, 찬양'(Doxa)을 의미한다.

교회의 신학과 윤리가 바로 예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교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항상 기준이 된 것이 예배였다. 이 이유 때문에 교회개혁의 절정은 항상 예배의 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의 핵심과 완성도 예배개혁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중세 유럽도시들이 종교개혁을 채택했을 때 개혁과정의 종결로 "미사가 폐지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채택되었다"고 선언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칼빈의 예배 원칙
칼빈 역시 수많은 종교개혁의 작업을 예배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했다.
칼빈은 '설교를 예배의 중심에 놓는 것'을 비롯하여 예배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칼빈은 어떤 원칙에 의해 예배를 개혁했는가? 흔히 4대 원칙을 말한다.

첫째는 성서적 원칙이다. 온갖 문화적 유입으로 혼탁해진 중세교회의 예배를 성서를 기준으로 하여 재정비하였다. 이에 근거, 성상을 철폐하고 성서에 제시된 세례와 성만찬 이외의 모든 종교의식을 폐지했다.
둘째는 이해의 원칙이다. 예배는 예배자가 무슨 내용으로 예배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개혁했다. 예배를 자국어로 드리고 회중이 참여하는 예배로 바꾸었다.
셋째는 공중예배의 원칙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듣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개인적인 기도와 묵상도 필요하지만 예배는 원칙적으로 회중이 함께 드려야 한다. 넷째 예배는 교훈적이어야 한다. 예배는 의식이 아니다. 예배를 통해 예배드리는 자의 인격과 삶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칼빈의 예배신학
이런 원칙을 가지고 있었지만 칼빈의 예배에 있어서는 이 보다 더 중요한 신학적 원칙이 두 가지 있다. 칼빈의 예배신학의 첫째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 위대하심에 대한 인간의 찬양이다.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인간의 인정과 복종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가 하는 것보다 칼빈에게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자체이고 그 존재의 위엄과 능력이다. 이기적인 개인구원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것을 인간이 인식하고 찬양하며 실현해 내는 믿음의 행동이 중요한 것이다. 칼빈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해 주셨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인간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 그에 대한 경의의 표현일 뿐이다.

칼빈의 예배신학의 둘째 핵심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는 점이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칼빈은 예배의 형식에 있어서는 유연했다. 예배는 드려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하며 적극적인 예배의 토착화를 독려했다.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는 점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말은 예배가 본질중심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신령과 진정으로의 예배가 방해되면 어떤 형식도 폐지했다. 칼빈이 4성부 화음으로 드리는 찬송도 폐지하고 시편운율가를 단선율로 부르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칼빈의 예배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고 신앙의 본질 중심이었다.

칼빈의 예배에 비추어 본 오늘의 예배
이와 같은 칼빈의 예배가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도전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이 예배의 주체이긴 하지만 예배를 드리는 인간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후대의 인간의 심리학 연구등으로 인간의 이성적 기능만이 아니라 감성적 기능도 이해에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발견한 현대의 인간이해는 칼빈의 이성적 이해중심의 예배에 많은 의문을 던졌다.

특별히 세속화시대를 거치면서 예배에는 인간의 위치가 많이 고려되었다. 어쩌면 이런 고려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예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하나님은 약화되고 인간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분명히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배가 드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오늘의 예배의 모든 초점이 인간을 위한 것으로 모아져 있지 않는가?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는 관심보다는 그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엇을 해 주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의 예배 속에 과연 하나님의 자리는 있는 것인가? 예배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 폐지했던 외적 형식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 단순했던 교회건축과 장식은 점점 화려해지고 찬양은 거의 대중가수들의 콘서트에 참여한 것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화려해 지고 있다.

이러한 오늘의 예배의 행태에서는 인간의 느낌만 난무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부재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영광 그의 은총이 인식되고 그와 관계하고 그에 대한 윤리적 결단과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점은 간과되고 인간의 느낌과 흥분과 감격과 감성적 열광만이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는가? 흔히  "은혜를 받았다" "은혜스러웠다"는 표현이 "내 마음에 와 닿는다"란 자신의 감정적 동의의 표현은 아닌가?

칼빈 탄생 5백주년을 기리는 것은 과거의 칼빈을 회상하는 것이 아닌 칼빈의 정신을 오늘에 성찰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으로 하여금 오늘 교회의 예배에 장엄한 개혁안을 부탁하는 것은 어떨까?


박 성 원
▲ 영남신학대 교수
▲ WCC 중앙위원
▲ 스위스 베른대(Dr.theol)
▲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 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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