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형 개혁신앙으로 시대 요구에 응답해야

21세기형 개혁신앙으로 시대 요구에 응답해야

[ 칼빈탄생5백주년 특집 ] (31) 칼빈과 장로교회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9월 10일(목) 12:06

장로교회와 개혁교회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전자는 교회직제에 있어서 평신도의 대표로서 장로제도(당회, 노회, 총회에서의 자리와 역할)에 초점을 맞춘 명칭이요, 후자는 16세기 당시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함에 있어서 '이신칭의'에 몰두하는 루터 종교개혁과 '산상수훈'(원수사랑 등)의 실천 등 과격한 개혁을 내걸었던 과격파 종교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장로교회'란 영국교회의 감독체제에 반대하는 맥락에서 스코틀랜드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영미 계통으로 확산되었고, '개혁교회'란 1560년대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하여 사용되다가 17세기에 굳어진 것으로서 유럽 대륙에서 사용되었다. 현재 우리는 나라는 '장로교'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지만, 세계교회 차원과 학문으로서 신학의 세계에서는 '개혁교회'와 '개혁신학전통'이란 용어가 지배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개혁교회연맹'(World Alliance of Reformed Churches)이란 말과 '개혁교회들의 에큐메니칼 협의회'(the Ecumenical Council of Reformed Churches)란 말이 사용되고 있으며, 후자와 전자는 2010년 미국의 미시간 주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WCRC(World Communion of Reformed Churches)로 연합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아래에서 '개혁교회'와 '개혁신학'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에서 성공하여 스칸디나비아 3국(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으로 확산되었고, 취리히(츠빙글리), 베른(할러), 바젤(외코람파디우스), 제네바(칼빈) 등 스위스의 도시국가들에서 성공한 개혁교회는 이미 16세기 당시에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스코틀랜드, 헝가리, 폴란드 등으로 확산되었으며, 17세기엔 영국과 웨일즈와 남아공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영국에선 1560년대에 청교도운동의 주류가 개혁파 교회였으며, 17세기에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개혁교회 전통을 형성하였고, 19세기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그리고 우리 나를 비롯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중남미에로 확장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 개혁교회는 16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동안 문자 그대로 세계화되었다. 이제 필자는 이와 같은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개혁교회의 확장을 염두에 두면서 과연 개혁교회들이 각 시대의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였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16세기 개혁교회: '개혁교회'는 루터교, 과격파 종교개혁, 성공회 등과 더불어 16세기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와 그것의 신학을 개혁하려는 과정에서 생겼다. 따라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도 그렇거니와, 16세기 '개혁교회들'의 모든 신앙고백서들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신학을 의식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개혁신학은 신학 논쟁적 상황에 지배를 받았다. '10개의 베른 신앙조항', '칼빈의 제네바 신앙고백', '벨기에 신앙고백'(기도 드 브레), 프랑스의 '갈리칸 신앙고백'(초안은 칼빈에 의하여 작성),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존 녹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 '제2 스위스 신앙고백'(불링거) 등이 그렇다. 물론, 칼빈신학이 이와 같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 속에 침투되어 있기는 하지만, '개혁신학'의 특징은 어느 한 신학자가 모든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칼빈 역시 '개혁신학전통'을 형성하는 여러 구성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물론, '이신칭의와 율법의 제3 사용',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순종', '구약과 신약의 구속사적 연속성', '4중직'(목사, 장로, 교사, 집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극장으로서 창조세계', 세속적인 삶을 거룩하게 사는 '직업윤리' 등을 주장함에 있어서 개혁신학전통의 어떤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지만 말이다.
 
17세기 개혁교회: 계몽주의 초기 인간의 과학적인 이성이 강조되고 교황의 권위가 강화되며 국가의 권위가 치솟아 개혁교회들이 압력을 받는 17세기 상황에서 17세기 개혁신학은 '성경'의 권위와 교리를 내세웠고, 루터교, 성공회, 과격파 종교개혁 전통, 그리고 트렌트 공의회 이후 로마가톨릭교회의 신학과 논쟁적으로 '바른 가르침'(정통 ^ orthodox)에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17세기 개혁교회는 이상과 같은 도전에 대하여 응전하는 과정에서 성경을 너무 문자주의적이고 명제주의적으로 읽음으로 그것을 우상화하였고, 너무 논쟁적이고 정확한 교리들에 대한 정의에 골몰한 나머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의 루터의 복음은 물론, 칼빈의 '삼위일체적이고 기독론적인 복음'의 역동성과 생동성을 상실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논쟁적으로 형성된 '개혁교회 교의학'은 칼빈이 아니라 그 당시 수많은 신학자들의 글들의 '모음집' 비슷한 것으로서 철저히 조직적인 신학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인간 구원 이야기를 중요시했던 칼빈의 신학과는 달리 17세기 개혁교회의 정통주의 신학이야말로 중세 스콜라주의 신학이 그랬던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사용하는 변증신학으로서 '복음'을 질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인다. 이 시대야말로 칼빈의 신학과 16세기 당시의 '신앙고백들'의 역동성과 생동성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을 요청받고 있었다. 
 
18∼19세기 개혁교회: 18세기는 경건주의(슈페너와 프랑케 등)와 복음주의 부흥운동(요한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 등)의 시대로서 개신교의 복음전도 활동이 추동되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통은 유럽과 미국 등으로 확산되었으니, 라투렛 교회사가에 의하면 19세기야 말로 '위대한 세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1870년대부터 1914년까지의 복음의 세계적인 전파(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중남미)는 그 질과 량에 있어서 그 이전 시기의 총화보다 더 큰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경건주의와 복음의 열정으로 불타올랐고, 하나님 나라(천년왕국)를 이 땅 위에 구현하려는 열망으로 사로잡혔던 18∼19세기의 도전에 대하여, 18∼19세기 개혁교회는 17세기와 같은 신학논쟁적이고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교리주의와 교파주의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일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17세기 정통주의에서 질식을 당하였던, 루터의 '복음'과 칼빈의 '삼위일체론적이고 기독론적인 복음'의 역동성과 생동성이 상당한 정도로 다시 살아 난 것은 18∼19세기의 '복음전도'의 요청 앞에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개혁교회: 세계 1차 대전, 히틀러의 인종주의적 국가사회주의, 프랑코와 무쏠리니의 파시즘과 일본의 군국주의적 파시즘, 세계 2차 대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원폭 등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었던 세계사적 격변들의 도전 앞에서 그리고 1980년대 체르노빌 방사능 누출 사고로 상징되는 환경파괴와 1989~1990년을 계기로 큰 힘을 얻고 확산되는 시장경제(혹은 신자유주의)의 글로벌화의 도전 앞에서, 우리 개혁교회는 어떻게 응전해야 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은 16세기적인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개혁의 상황도, 17세기적인 정통주의 확립의 상황도, 18∼19세기적인 복음전도의 상황도 아니다.
 
히틀러의 이념에 동조하는 '독일 기독교인들'과 히틀러를 묵인하는 제도권 개신교들과 로마가톨릭교회를 겨냥하여 칼 바르트가 초안한 1934년 '바르멘 신학선언' 이래로 '1967년도 미국연합장로교회의 신앙고백'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개혁교회 신앙고백들의 신학은 세계 1차 대전과 그 이후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작성되었다. 그리하여 바르트 이래로 라인홀드 니버, H. 리차드 니버, 윌겐 몰트만, 로호만 등의 세계개혁신학은 '세계개혁교회연맹'이 나가는 방향 및 WCC를 통한 에큐메니칼 운동과 괘를 같이하면서 오늘날 교회에 도전해 오는 문제들을 신학적으로 풀어내려고 애쓴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로 인한 무한경쟁과 무한 성장으로 빈익빈 부익부를 경험하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파괴에 직면해 있고, 인간의 인간 및 자연에 대한 폭력을 목격하고 있는바, '정의와 평화와 창조세계의 보전'이 요청되는 상황에서 WCC를 통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열심히 동참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개혁교회의 정체성과 전통을 보수해 오는 데에 역점을 두었던 '개혁교회들의 에큐메니칼협의회'(the Ecumenical Council of Reformed Churches)가 2010년에 '세계개혁교회연맹'과 한 몸을 이룬다면, 20세기 개혁교회의 방향은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세계선교(단순한 복음전도만이 아니라)에 동참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그리하여 20세기 개혁신학은 칼빈과 지금까지의 개혁신학 전통을 새롭게 계승하고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개혁신학을 제시하고 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다시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은 '개혁된 신학은 항상 다시 개혁되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무조건 16세기의 칼빈 신학을 절대화시킨 나머지 칼빈의 신학으로 돌아가자고 외칠 것이 아니라 그것의 좋은 점들을 20세기의 도전들에 대응하여 계승 발전시켜야 마땅할 것이다.

이 형 기
▲ 장신대 명예교수
▲ 서울대 종교학과
▲ 장신대 신대원(신학석사)
▲ 미국 하버드대(Th.M.)
▲ 미국 드류대(Ph.D.)

■  '장로교'가 무엇인가요?
장로들이 통치하는 사도적 교회

한국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로교. 그러나 기독교인을 제외하고는 장로교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장로교는 무엇인가?
 
장로교에서 '장로'라는 말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감독' '장로' 등과 같은 의미로 장로들에 의해 치리되는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장로교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비롯한 웨스트민스터요리문답과 헌법, 예배지침 등의 규범을 갖고 운영하고 있다.
 
제임스 모펫은 '장로교'라는 용어에 대해 장로들이 통치하는 사도적 보편적 교회를 지시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장로교 구성 원리로 장로들의 동등성을 비롯한 평신도 장로들을 통한 교회 정치 참여와 교회회의에서의 교회의 통일성 등을 강조하기도 했다.
 
장로교는 16세기 종교개혁자인 칼빈으로부터 출발한 이후에 전 유럽으로 확산돼 갔다. 급기야 1560년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를 국교로 정하기도 했다. 이후 장로교는 영국과 미국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전파됐다.
 
한국에서는 19세기말부터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장로교가 전파됐고 1912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세계적인 장로교 연합 에큐메니칼 기구로는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이 있으며 현재 세계 장로교 교인수는 5천여 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성진 ksj@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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