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나눔의 목회 제안

섬김과 나눔의 목회 제안

[ 특집 ] 8월 특집 경제 위기 극복 위해 한국교회가 뛴다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8월 19일(수) 09:24

홍인식/목사 ㆍ현대교회

작년 미국 발 서브프라임 부실로부터 시작하여 전 세계를 강타한 국제 금융 경제 위기는 우리 모두를 혼란하게 만드는 데 충분하였다. 특히 도덕성보다는 경제제일주의를 앞세워 정치적 최고 지도자를 선택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로서는 더욱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번 금융경제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먼저 이번 위기의 원인을 미국이 주도했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내부적인 모순과 문제로부터 발생하고 있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무한한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최고의 효율성의 추구 그리고 끝없는 생산과 소비를 통한 무한한 부의 축적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마치 '자전가 타기'처럼 끝없이 앞을 향하여 달려 나가야만 하고 결코 멈춰서는 안되는 내부적 모순을 가지게 된다. 파생상품 등 일반인들로서는 아니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이해하거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금융상품의 등장은 이러한 '자전거타기'의 구체적인 행위의 결과로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결국 내부 모순의 확대재생산의 결과로 폭발한 것이 이번 위기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을 분석하여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내놓은 원인분석의 내용 중에서 목회 현장의 한복판에 있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번 금융위기의 배후에는 '탐욕'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이번 금융경제 위기의 주범이 인간의 탐욕임을 지적하고 있다. 탐욕, 그것은 신학적 주제이며 목회의 주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금융경제위기를 경제학자의 몫으로 남겨 두고 우리는 목회에만 전념하자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는 필연적으로 경제에 대하여 성경적 그리고 신학적으로 언급해야 하고 목회의 중요한 사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이번 위기를 섬김과 나눔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위기극복에 대한 대안을 내놓고 뛰고 있다. 그렇다. 섬김과 나눔이라는 목회적 주제는 교회가 금융경제 위기 속에서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는 세상을 향하여 내놓을 수 있는 방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섬김과 나눔이라는 말이 부쩍 유행처럼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섬김과 나눔의 주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주제는 항상 기독교 교회가 주장해 왔던 내용이 아닌가?

많은 시간동안 교회가 섬김과 나눔의 사역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제 위기 국면에 있어서 위기극복을 위한 대안 논의에 있어 이 사회가 교회에 대하여 그리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많은 경우 기독교 신앙이 경제위기의 원인이 되는 탐욕을 확대재생산 하는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교회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사회를 향하여 섬김과 나눔의 주제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섬김과 나눔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의 재정비의 측면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섬김과 나눔을 통하여 금융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목회가 다음과 같은 목회적 패러다임을 보여 주어야 한다.

첫째는 성장과 끝없는 발전의 패러다임에서 멈춤의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목회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다. 한국 교회의 최대의 화두는 무엇일까? 그것을 교회의 수적 성장이라고 지적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교회의 모든 사역은 교회 성장으로 귀결되고 있고 또 목회에 대한 평가 기준도 교회 성장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마치 자본주의가 '자전거타기'를 통하여 유지되듯이 '교회 성장'은 한국 목회의 '자전거타기'이다. 끝없는 성장 욕구의 모습을 보이는 한국 교회가 수 없이 섬김과 나눔을 실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대안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교회가 주장하는 섬김과 나눔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멈춤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실천함으로써 자족의 모습을 보이는 목회적 패러다임으로의 변환이 시급하다. 욕망의 제어, 이것이야 말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하여 뛰는 한국 교회가 실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로 소유의식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사유재산은 신성불가침이라는 것이 과연 기독교적 가치인가를 우리는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결국 사유재산의 신격화를 통하여 인간의 욕망을 끝없이 확장함으로써 오늘의 위기를 초래하였다. 과연 사유재산의 신격화에 대한 의식 변화 없이 이루어지는 섬김과 나눔이 오늘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일시적인 방편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결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과 더불어 우리는 단지 살아가는 동안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았다는 청지기 의식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소유의식이 아니라 사용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의식으로부터 나오는 섬김과 나눔은 시혜적인 성격을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의 은혜성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목회가 교인들로 하여금 '사유재산의 신격화'로부터 벗어나서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것이라는 소유의 공공성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것이 종국에 탐욕으로부터 비롯된 오늘의 경제위기를 근본적인 면에서 극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세 번째로 올바른 정체성 확립을 위한 목회적 패러다임으로의 변화가 절실하다. 최근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 내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귀족들이(?) 사회에 대한 일정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섬김과 나눔의 행위를 하는 계층이 노블리스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섬김과 나눔의 행위 주체자는 스스로를 노블리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목회적 섬김과 나눔의 출발이 이러한 정체성으로부터 출발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경적 섬김과 나눔이 될 수 없다. 교회가 스스로를 노블리스로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모양으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하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상실하게끔 하고 있다. 기독교적 섬김과 나눔은 노블리스의 입장에서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서 낮은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섬김과 나눔이 되어야 할 것이다. 노블리스가 아닌 낮은 자로서의 섬김과 나눔이 이루어질 때 탐욕으로 인하여 맞고 있는 지금의 경제적 위기의 극복을 향한 기독교적 대안으로써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요에 의한 삶의 훈련을 위한 목회적 패러다임으로의 변환이 요구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위기의 배후에는 인간의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삶은 필요가 아닌 탐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섬김과 나눔'을 말하기 이전에 우리의 목회 패러다임이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에 의한 것으로 삶을 추구하게끔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탐욕을 부채질 하는 모양, 다시 말하면 신앙을 개인의 탐욕 실현의 도구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상적인 삶의 실현은 욕망을 기반으로 사는 사회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삶을 추구하는 가운데서 실현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섬김과 나눔'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일시적인 방편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삶을 향한 훈련으로 자리 매김할 때 탐욕으로 인하여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경제위기를 방지하는 좀 더 견고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단순한 위기극복의 처방을 마련하는 데만 주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이번 위기를 통하여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을 성찰하고 삶과 목회의 패러다임 자체를 개혁하고 변환시키는 근본적인 처방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목회적 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제시되는 섬김과 나눔은 진정 탐욕에 찌들은 이 사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예언자로서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뛰는 한국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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