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경제관으로 보는 오늘의 경제위기

성서적 경제관으로 보는 오늘의 경제위기

[ 특집 ] 8월 특집 경제 위기 극복 위해 한국교회가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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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29일(수) 09:40

강성열/호신대 교수ㆍ구약학 

경제 위기의 현실

지금 우리 사회는 작년 가을 미국의 부동산 부실대출(서브프라임)로 인하여 생겨난 국제적인 금융 위기와 그로부터 비롯된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여파로 전에 없이 큰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부작용으로 생겨난 저성장과 사회 계층의 양분화라는 왜곡된 경제 구조의 깊은 늪에 빠져 있다. 이처럼 포괄적인 경제 위기는 미국 중심의 과도한 금융주도 자본주의와 그것을 포괄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도를 넘어선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 그 한 원인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힘없고 약한 자들의 신음 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크게 들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경제 위기의 때에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사회ㆍ경제적 약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여, 오늘의 경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가를 성서의 가르침을 통해 확인하는 작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매우 중요한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곧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국가적인 경제 위기의 상황에 어떻게 응답하고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이고 규범적인 해답을 내리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신앙적인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경제 문제의 핵심은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줄이고,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며, 어떻게 하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느냐에 있음이 분명하다. 달리 말해서 개개인의 품성이나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다양한 조건들-생활공간의 지리적인 조건이나 기후 또는 풍토 등-에 의해 생겨나는 가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공동체 안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경제적인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야말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경제 문제의 핵심이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경제 윤리의 요체인 것이다.

성서의 경제 윤리와 사회 정의

성서는 이에 대하여 매우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다. 경제 문제와 관련된 많은 성서 본문들(출 22:21~27, 레 19:9~10, 13, 23:22, 25장(희년 제도) 신 14:28~29, 15:1~18, 16:9~17, 23:19~20, 24:10~22, 마 6:1~4, 19:16~24, 눅 12:13~34, 16:19~31, 18:18~30 등)이나 힘없고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가슴에 품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다양한 구원 사역들을 두루 살펴보면, 성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ㆍ경제적인 약자 내지는 가난한 자들이 강하고 부요한 자들에 의해 압제 당하는 사회적인 불의의 현실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와 아울러 성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하나님 자신의 품성에서 찾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라는 강대 제국의 압제 하에 고통당할 때 그들을 해방시키신 분이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등 사회ㆍ경제적인 약자들을 돌보시고 붙드시는 분이라는 설명이 그렇다. 이러한 동기 부여는 결국 사회 정의에 기초한 바람직한 경제 윤리가 하나님의 구원 은총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당한 응답임을 의미하며, 그것이 약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인간적인 관심사 내지는 자선의 차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시는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비롯됨을 뜻한다.

성서가 가르쳐주는 교훈

이처럼 기본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우리는 성서가 가르치는 교훈들로부터 오늘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의 원리들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물의 진정한 소유주는 하나님이요, 자신에게 있는 것이나 남에게 있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소유권 개념에 투철한 자는 당연히 자신의 것을 청지기의 심정으로 잘 관리할 것이며, 남에게 있는 것을 자신의 것처럼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가질 것이다. 특히 가난한 자들의 것을 탐내고 그들의 것을 무리하게 빼앗는 일은 절대적으로 삼갈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나 기업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그것을 가진 자들에게 책임감을 요구하며 매우 분명한 과제를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서가 가난과 청빈을 종교적인 이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유욕을 포기하고서 자신이 가진 것을 많이 가지지 못한 자들과 함께 나누는 섬김의 정신을 강조하고, 서로 돕고 의지하는 정의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재물은 때때로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풍요의 종교를 추구하게 하며 우상 숭배에 버금가는 탐심의 죄를 범하게 하는 까닭에(엡 5:5, 골 3:5), 이기심과 탐심을 물리치고서 하나님의 경제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과 윤리의 차원을 넘어서서 신앙적인 삶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경제 문제를 신앙의 문제로 깨닫고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순종하여 살고자 하는 정의로운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지향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셋째로 우리는 사회 정의를 왜곡하고 사회ㆍ경제적인 약자들을 괴롭히는 법이나 제도를 고치는 일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의 경제 윤리는 단순히 개개인의 신앙적인 삶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체 구조를 하나님의 정의에 맞게 고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토라, 곧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약자 보호의 기본 정신이 오늘의 법과 제도에 그대로 반영되게 하고 또 그러한 법과 제도가 바르게 집행되게 하는 데 앞장서야 하며, 예언자적인 비판 정신을 가지고서 가난을 제도화시키는 잘못된 사회 구조를 교정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한편으로, 재물이나 돈을 절대시하는 경제 체제를 배격하고 하나님의 주권이 경제생활 전반에 확립되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교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이 정당한 권리 소유에서 소외당하는 일이 없도록 건전한 압력 단체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가난한 자들과 동일시 할 수 있는 공감의 정서가 필요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로운 경제 공동체의 건설을 향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물론 당연히 가난한 자들을 위한 참여는 사회 계층 간의 투쟁보다는 계층 통합에 역점을 두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일반 시민단체나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과 연대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경제 정의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국내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까지 확대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지구화의 시대에서는 초국적 기업들의 횡포와 부강한 나라들의 경제 침략에 의해 약소국가 국민들이 강대국의 경제적 속국으로 전락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대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오늘날 세계개혁교회연맹과 세계교회협의회 등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는 경제 불의의 문제를 신앙고백의 과제로 천명하고서, 이에 대한 신학적인 대응을 펴나가기 위해 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이러한 세계 교회 에큐메니칼 운동과 연대하여 하나님의 경제 주권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의 형성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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