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무덤, 성 피에르교회 등 칼빈 유적지엔 개혁 정신 가득

칼빈무덤, 성 피에르교회 등 칼빈 유적지엔 개혁 정신 가득

[ 선교 ] 7월 10일, 칼빈 생일 맞아 제네바 유적지에 대한 관심 고조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09년 07월 07일(화) 14:56
   
▲ 제네바 대학 안에 마련된 존 칼빈의 부조. 칼빈 탄생 4백주년을 기념해 세워졌다. 사진/장창일기자

7월 10일은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탄생 5백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가 활동했던 제네바를 비롯해서 전 세계에서 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세미나와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제네바에 흩여져 있는 칼빈의 흔적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의 의미를 살펴본다. 아래 기사는 지난 해 10월 제네바 현지 취재 후 집필했던 기사를 제구성 했다.

장로교의 아버지, 종교개혁자, 제네바의 지도자 등 존 칼빈을 수식하는 말들이 줄을 잇는다. 그가 태어난 지 올해로 5백주년이 됐다. 7월 10일은 칼빈의 생일로 그가 활동했던 제네바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그의 삶과 정신, 신학을 기념하는 다양한 모임들이 이어지고 있다.
 
태어난 지 5백년이 지난 지금, 신앙의 후예들이 존 칼빈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종교개혁을 향한 그의 순수함. 날마다 개혁되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그의 목소리들 속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가르침들이 잔뜩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후손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칼빈은 그의 탄생 4백주년에는 제네바대학 내 바스티옹공원(Parc des Bastions)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장엄한 부조로 태어났고 그뒤로 백년이 흐른 지금에는 그가 삶을 통해 역설한 정신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네바에 남아있는 칼빈의 흔적들은 솔직히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가 잊혀졌거나 그의 정신이 퇴색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원한 것이 바로 지금의 소박함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소박한 풍모의 칼빈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건 무엇보다 그의 무덤이다.
 
제네바 시내, 샴브르 모르뛰에르 드 플랭플레(chambres mortuaires de plainplais, 플랭플레의 죽은 사람들의 방)에 칼빈의 안식처가 있다. 조용한 공원을 연상케 하는 이 묘지는 매우 오랜 세월 이 자리에서 있으면서 제네바 사람들의 죽음을 품어왔다. 이 공동묘지의 깊숙한 곳에서 너무도 평범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칼빈의 묘소를 찾을 수 있었다.
 
전 세계의 수 많은 장로교인들이 다녀갔을 법한데도 도드라진 표식조차 없다. 사실 혼자갔다면 찾는데도 애를 먹었을 법하다. 1564년, 55세의 나이에 임종하면서 칼빈은 동지들에게 개혁을 굳건히 수행해 달라고 당부한다. 그것 뿐이었다. 묘비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 유언은 지켜졌다. 그의 무덤, 707번 묘지의 작은 비석에는 알파벳 'J. C.'가 덩그러니 써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묘지 아래 누가 묻혀 있는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데 인색했던 칼빈의 무덤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후세들의 욕심인지도 모를 일이다. 비석에 쓰여져 있는 'J. C.'가 이곳이 칼빈의 무덤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유일무이한 이유다.
 

   
▲ 제네바 시내에 있는 한 공동묘지. 이곳에는 무척 소박한 칼빈의 무덤이 있다. 그의 무덤을 알려주는 유일한 표식인 '707'. 제네바에는 칼빈이 남긴 개혁의 정신이 가득하다. 사진/장창일기자

제네바 구(舊)도심 한 가운데에는 칼빈이 시무하던 생 피에르교회(St. Pierre Church)가 있다.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인 셈이다. 생 피에르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복잡하게 얽힌 제네바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이다. 13세기에 완공되었지만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개혁교회가 된다. 현재의 네오클래식 양식의 전면부는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전의 고딕 양식을 대체한 것이다. 교회의 우측에는 깔뱅이 신학 강의를 했던 신학교가 있고, 교회 지하에는 2천 여년 전의 은화와 4세기경 예배당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다. 생 피에르교회 앞 광장에 앉아있으면 당장이라도 칼빈이 나와 신학강해를 할것 같은 고풍스러움이 전해진다. 제네바는 그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신앙의 후예들을 맞이한다.
 
제네바의 구석구석에서 칼빈의 흔적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보다 더욱 의미있는 건 그가 가르치고 남긴 개혁신학의 정신이 아닐까. 매일 개혁하는 삶, 이것이 바로 존 칼빈의 진정한 유산이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