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2~27일

6월22~27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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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 18일(목) 16:43

월-가치 혼돈의 시대
본문: 삿 21:25
찬송가: 323장(구 355장)

남북통일의 문제는 우리와 다음 세대들에게까지 큰 짐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으면서 가치혼돈을 경험하고 있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지나간 20세기만 돌이켜보아도 우리는 일본제국 식민통치, 해방, 건국, 남북분단, 동족 간의 6ㆍ25전쟁, 군사정권과 산업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와 같은 가치대립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이와 같은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이스라엘의 역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조상은 유리하는 소수의 유목민이었다(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집트에 내려간 그들은 4백30년을 지내면서 큰 민족을 이루긴 했지만 바로의 노예가 되고 만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구해 주신다. 그 후 40년 광야생활 속에서 율법 말씀을 받고 배운다. 드디어 여호수아와 함께 언약의 땅 가나안을 얻는 축복을 누린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3백50년 동안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만다. 가치혼돈의 시대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치혼돈의 핵심은 온전하고 진실된 하나님을 경외함보다는 가나안 땅의 우상들 섬김에 있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가치혼돈의 중심에도 세속가치에 휩쓸려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에 그 뿌리가 놓여 있다. 여호수아의 세겜 언약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결단이 우리 가정에도 있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가치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각기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시류를 따라서 세속가치에 편승해서 살지 않고, 오직 주님만 따르고 주의 복음에 순종하며 사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성 한 목사
초원교회 시무


화-십자가 외에는
본문: 갈 6:11-18
찬송가: 144장(구 144장)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은 행복한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해 대신 고난당하실 때에 한편에 있던 강도는 구원을 받았다. 그는 오직 십자가에 달려 지금 함께 고통 받고 있는 그분 말씀을 의지했던 행복한 사람이었다. 십자가만을 붙들지 않는 사람은 육체의 자랑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가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고 보잘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부끄러운 것 밖에 없는 사람은 붙들 것 이라고는 오직 십자가가 아닐까? 수가성 우물가에 남편을 다섯이나 가졌던 여인이 그런 자였고 간음하다가 현장에 붙잡힌 여인이 그런 자였다.
 
성경 말씀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31)"고 나와있다. 왜 세리와 창기들이 먼저 들어갈까? 그들은 자신의 죄를 충분히 깨닫고 십자가만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은 후에 들어간다는 말이 아니다. 십자가를 붙들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말씀이다. 성경말씀에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3)."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붙들라고 가르치고 육체를 자랑하고 있던 자들이 아닐까?

오늘도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바울의 말씀을 명심하시기 원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저희는 그것을 소홀히 여기고 살았습니다. 내 자신을 토색, 불의, 간음한 자들과 같지 아니하다는 것을 조금도 내세우지 않게 하옵소서.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 에 녹 목사
거문교회 시무


수-훈련시키시는 하나님
본문: 출 14:1-14
찬송가: 390장(구 444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시는 과정을 보면 쉬운 길 가까운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길로 인도하셨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하여 승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받는 훈련은 크게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있다.
 
외적인 훈련은 사람을 통해서 온다. 애굽 사람들이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택한 길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믿음의 길은 비합리적이라고 비웃음을 당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말과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굳건히 지킴으로서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유혹을 이겨나가도록 훈련시키신다. 시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며, 주님을 닮아갈 수 있다.
 
내적인 훈련은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한 환경 앞에서 부정적이고 믿음 없는 말을 쏟아내며 원망한다. 신앙생활의 최대의 적은 영적 무기력과 원망이다. 영적 무기력은 신앙의 의지와 목표를 상실하게 한다.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자기의 기대에 어긋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태도는 불신앙이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나를 훈련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자. 그리고 인내하며 나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를 갈라 그곳을 지나가게 하신 하나님의 기적을 우리의 삶에서도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자녀 삼아주시고,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소원은 우리 가정 뿐 아니라 모든 주의 백성들이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 성 규 목사
울산산성교회 시무


목-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
본문: 대하 6:12-17
찬송가: 446장(구 500장)

우리나라는 1960년대 중반까지도 유엔에 등록한 1백20여 국가 중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최빈국이었다. 경제역사를 보면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하는데 영국은 2백 년, 미국은 1백80 년, 일본은 1백 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30년 만에 달성하였다. 교회의 성장도 교회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아직 사회적인 갈등과 대립, 빈부격차가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만큼 단기간에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룬 나라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에게, 언약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첫 성전(솔로몬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한 왕이다. 또 그 지혜가 뛰어났고,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리기도 하였다. 그 복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솔로몬이 받은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에게 허락하셨던 언약에 대하여 신실하게 응답하여 주셨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증언한다.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하면서 기도한 솔로몬의 고백에 주목해 보자.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되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그렇다. 오늘 우리들이 받은 이 모든 축복도 전적으로 언약의 말씀에 대하여 신실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위에 우리 가정과 일터와 삶을 든든하게 세우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자.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오늘과 같은 큰 복을 받음은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총입니다. 교만하지 않게 하옵소서. 겸손하게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가정과 나라와 국민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 은 호 목사
정릉교회 시무


금-내 말을 듣고 행하라
본문: 마 7:21-29
찬송가: 218장(구 369장)

아테네의 연극공연장에 한 노인이 늦게 입장하였다. 꽉 메워진 관람석에서 빈 자리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노인을 본 아테네 사람들은 "양보해야 하는데"라고 수군거리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노인이 외국인석으로 향하자 한 스파르타 청년이 일어나 자리를 내어주었다. 이 때 노인은 "아테네인도 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은 그것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신앙에서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아는 것으로 다른 영혼을 구원할 수 없지만 행동으로는 사랑을 전할수도 있고 영혼을 구원할 수도 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 2:17)"라고 했다.
 
본문은 믿음의 행함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근실한 신자로 하여금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성취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단순히 기독교의 원칙과 법령을 외견상으로 준수한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행함이 없는 말뿐인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힐책하면서 천국문을 닫아 버린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의 뜻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결코 참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배고플 때에 먹어야 하고 헐벗을 때에 입어야 따뜻하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실제로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어야 참된 구제이다. 믿음도 실천이 뒷받침될 때에 비로소 참믿음이고 살아있는 믿음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허물 많은 저희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매일같이 주님으로부터 받으며 사는데 이웃의 필요를 외면하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는 나누며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승 범 목사
토평교회 시무


토-주가 주신 행복
본문: 막 10:46-52
찬송가: 488장(구 539장)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실 때 마침 소경 바디매오가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외쳐 불러, 결국 눈을 뜨게 되며 구원에 길에 이르게 된다.
 
그가 행복한 것은, 믿음과 희망을 갖고 주님께 구했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
 
첫째, 주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시다. 사람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단연 '희망'이다. 괴테는 "인간이 절망하는 곳에는 어떤 신도 살 수가 없다"고 했다. 주님이 바디메오를 만나 주신 것은 그에게 크나 큰 희망을 주신 것이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 상실해버린 희망을 되찾자.
 
둘째, 희망을 갖는 사람은 실망하지 않고 주님에게 끝까지 구해야 한다. 나사렛 예수란 말을 들은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고 많은 사람들이 꾸짖어도 더욱 소리 질러 외쳤다. 더구나 주님이 부르시니 겉옷을 내버리고 일어나 예수께 나아왔으며, 무엇을 원하냐고 물으실 때, 주저하지 않고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 또한 주님께 이런 간구함이 있어야 한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끈기있게 주께 구하면 육신의 문제만 해결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혼의 눈을 떠서 진리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성도는 문제에 직면할 때 하나님을 믿는 굳건한 신앙으로 끝까지 간구해야 예수님께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며 우리를 행복한 사람으로 이끌어 주실 줄 믿는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 희망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희망을 갖고 끝까지 구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참된 제자의 삶을 살게 하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 상 옥 목사
남부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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